홍도기행(1/3)

2011. 10. 6. 07:41명승지

 

 

 

 

 

홍도기행(1/3)

여행이란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 한다. ‘~다음에’란 말은 구차한 변명이요, 마음이 지어낸 미사여구(美辭麗句)일 뿐이다. 한해 한해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한 여름 쉬이 변하는 숙주나물 같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던가. ‘주저주저’ 하다 보면 ‘주저(躊躇)’가 ‘저주(咀呪)’가 된다고 또 누가 그랬던가. 토요일 밤 저녁 9시 카메라만 달랑 배낭에 넣고 홀로 집을 나섰다. 아름다운 섬 홍도, 요 며칠 째 여린 내 귀를 시세발로 뽐부질 한 탓일까.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늦은 밤 터미널은 불빛만 요란하다. 매표소를 물으니 호남 쪽 방향 티케팅은 이제 강남 터미널이 아니고 센트럴로 모두 이전했단다. 그런 것도 모르고 무작정 출발한 이 아둔함... 한참 지하도를 걸어 호남선 매표소창구에서 목포행 표를 끊었다. 어둠 속을 질주하는 심야고속버스. 잠시 편안을 찾은 마음은 깊은 잠 속으로 떨어진다. 목포 고속터미널에 닫으니 새벽 3시다. 4시간 정도 걸린 모양이다. 아무런 예약 없이 떠난 여행이라 행여나 현지에서 배편을 못 구하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서 들먹거린다. 그렇다면 어떤가. 또 다른 무슨 수가 있겠지.. 하는 오만한 생각으로 우려를 접었다. 그래도 속마음은 그런 불상사(不祥事)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연안 여객선터미널로 갔다.

 

 

 

무작정 떠나 온 섬여행. 어둠 속 고도(孤島)을 날으는 한 마리 갈매기 같은 기분이다. 삶이란 것도 그렇지 않은가. 무슨 예약이 있어 지금 여기까지 살아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인연 따라 시간이란 바람에 실려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아침을 기다리는 긴 어둠의 터널, 시간은 그 속을 절름거리며 흐른다. 구원의 해가 뜨려면 아직 한참이나 멀었다.

 

 

 

밤길을 달려 온 걸음이라 시간은 많은 데 들린 곳도, 쉴 곳도 없다. 속이 편하지 않아 불켜진 식당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 들어가기 싫고, 여객대합실이라도 열려 있는가 하여 기웃거려 보니 출입문이란 출입문은 모두 감옥소 담벼락같이 굳게 닫혀 져 있다. 어디 24시 영업하는 여객선 터미널이 있어서면 하는 뚱딴지같은 생각도 든다. 첫 배편이 7시 10분이니 아직 4시간이나 남아 있다. 온 몸이 나른하다. 차안에서 잠간 만난 두 눈썹이 다시 재회를 독촉한다. 쉴 곳이 간절하다. 졸리는 잠을 이기려고 어슬렁어슬렁 혼자 여객선 터미널 주변을 두세 번 돌아보았다. 그래도 어둠은 꼼짝을 하지 않는다. 다시 둘러보니 여객터미널 옆 화물집하소는 불이 켜져 있으나 일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야적장 한쪽 켠에는 컨테이너만 즐비하게 쌓여져 있고 작업등 불빛만 댕그란히 홀로 비추고 있다. 한참을 더 걸었다. 수산물공판장이 보인다. 아직 한 밤 중인데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다. 새벽을 여는 부지런한 사람들인가. 삶이 그래서 그런가. 그래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돋아 나 있다. 밝아오는 새 아침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이곳도 출입문은 모두 닫아놓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쇠창살로 엉기엉기 막은 유리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아침 경매를 대비해 준비하나 보다. 밤새 잡은 갈치며, 낙지며, 패류 등을 맨 시멘트 바닥에 각목으로 칸을 질러 거기다 각자 자기 몫을 쌓아놓고 그 위에 얼음으로 채우고 있다. 아침까지 좀 더 싱싱하게 보이려고 하는 모양이다.

 

 

 

6시가 되어가니 홍도 가는 여행객들과 인근 섬으로 가는 사람들이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2층 여객선 터미널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홍도에는 무인도를 포함하여 크고 작은 섬들이 1004개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 홍도를 천사의섬 이라고 한다나. 홍도로 가는 이는 대부분 여행사를 통한 여행객들인가 보다. 어디서 왔는지 계속 꾸역꾸역 모여든다. 나처럼 밤새 달려온 것인지 대합실 내에 만들어 놓은 마루 같은 시멘트 대청에 느긋하게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도 있다. 터미널 사무직원은 보이지 않는데 그 새 문은 누가 열어놓았던 모양이다. 무덤 같았든 대합실이 저자거리 마냥 수다꾼들로 가득 찼다. 모두들 파리 떼 마냥 둘러앉아 수다를 피운다. 연안부두 터미널의 매표소는 2층이지만 여행사들은 모두 3층에 있다. 올려다보니 여행사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다. 매표소는 아직 직원이 나오지 않아 여행사에서 표를 구입하기도 했다. 3층으로 올라가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여행사에서 당일 홍도 왕복권을 구입했다. 홍도까지 뱃삯은 서울서 목포까지 심야고속비 보다 더 비싸다. 그래도 일찍 나와 준 여행사 직원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흑산도를 경유하는 1박2일 코스는 2일 전에 이미 매진되었지만 홍도 당일 코스는 그리 빡빡하지 않은 모양이다. 부질없는 우려를 한 셈이다. 이제 1시간 정도만 더 기다리면 출발이다. 어둠 속에 숨어있던 배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갈매기들도 오늘 일과를 시작하려는지 가로등에 올라앉아 몸단장을 한다. <목포는 항구다.> 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선착장에는 정박한 배들이 많다. 카페리호하며, 유람선에 고기잡이배까지. 멀리 여명의 붉은 기운이 구름 사이로 서서히 걸어온다. 이제 홍도로 가는 가 보다. 개찰을 알리는 멘트가 스피커에서 낭랑하게 들려온다.

 

 

 

어제까지 듣기로는 날이 맑다고 했는데 흐리다. 이상하게도 여행은 떠난 날은 맑고 도착하면 흐린 날이 많다. 여행운이 나쁜가. 그렇지는 않는데. 바람도 거칠게 불었다. 섬여행의 최대 장애물은 날씨다. 파도의 너울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바람이 강할수록 너울은 커지고 너울이 커지면 선체의 롤링도 커진다. 다행이 나는 멀미를 하지 않았다. 어제는 일기가 더 나빠 500여명이 선편을 찾았는데 그중 멀미하지 않은 사람은 몇 사람이 되지 않았다고 승무원이 알려준다. 오늘은 그나마 어제 보다 좋은 날씨라고 위로겸 말을 건내 준다. 안전을 대비해서인지 파도 때문에 운항 중에는 갑판으로 나가는 일은 금지되어 있다. 꼬박 2시간 20여분 동안을 자리에 갇혀서 홍도에 도착했다. 비린 짠 내음과 함께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시원스럽다. 이제 조금 해방감이 든다. 선착장에는 미리 대기한 여행사 직원들이 자기네 여행사 깃발을 들고 <여기요, 여기 요> 하고 소리소리 지른다. 자기네 가이드를 찾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따라 움직인다. 홀로 떠나는 여행은 적어도 그런 번거로움이 없어 좋다.

 

 

 

홍도 관광의 백미는 해안을 따라 늘어 선 바위들이 비경이다. 유람선 시간을 알아보니 12시30분이란다. 목포행 마지막 배편이 3시 30뿐이니 섬을 둘러보고 나면 바로 목포로 돌아가는 배를 타야하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고작 2시간이 채 안 된다. 당일 여행이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민박은 떠나 올 때 이미 포기한 상태이니. 설령 알아본들 여행사에서 모두 부킹을 한 상태라 남아 있는 것도 없을테고. 홍도에서 제일 높은 산은 깃대봉이다. 368m 의 나지막한 야산이다. 들머리에서 휘휘둘러보니 관심을 끌만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도 그렇고 해서 깃대봉 등산은 포기했다. 대신 유람선을 타기 전에 요기나 하고 선착장 부근의 해안을 둘러보기로 했다.

 

 

 

 

 

홍도섬의 바위들은 퇴적암으로 철분이 많은 규암석과 사암 그리고 석회암으로 되어있다. 특히 철분이 많은 규암석은 석양 노을을 받으면 붉은 색이 더 붉게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홍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모양이다. <붉은 섬> 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불행히도 오늘은 그런 행운을 즐길 여유가 없다. 유람선관광이 끝나면 바로 목포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산의 흐름을 보니 암맥(巖脈)이 해안까지 뻗어 있다. 이런 지형은 파도와 바람에 쉬이 침식이 된다. 석회암의 바위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홍도는 침식된 해식(海蝕) 동굴이 참 많이 눈에 뜨인다. 시루떡을 쌓은 듯한 묘한 바위들은 모두가 판상(板狀)절리다. 기둥같은 주상(柱狀)절리의 바위도 보인다. 해라도 비추어 주었으면 붉은 색이 드러나 일품이겠지만 오늘은 날이 흐려 회백색으로 보인다. 이제 유람선 나들이 시작이다. 설상가상으로 바람조차 슬슬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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