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암(단양기행4)

2008. 4. 7. 23:03국내 명산과 사찰

 

  사인암{舍人岩}

사인암은 단양팔경 중 하나로 그 사인암이란 유래는 조선 성종 때의 단양군수로 있던 이제광이 고려말 사인(종4품 벼슬에 해당하며 신라 때로부터 내려온 관직명으로 이조에서 품이 달라진다)을 지냈던 우탁이 여기에서 머물렀기에 그를 기리기 위해 이 암벽을 사인암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30m가 넘는 암벽이 그의 지조를 품은 듯하고.. 


우탁(禹倬1263(원종4)~1342(충혜왕 복위3년). 고려말기의 학자다. 자는 천장(天

章) 시호는 문희(文僖), 본관은 단양 진사 천규(天珪)의 아들. 문과에 급제하고 영해사록으로 있을 때 고을에 요신(妖神)의 사당이 있어 민심을 현혹함으로 이를 없앴고, 감찰규정으로 있을 때 충선왕이 숙창원비(淑昌院妃)를 밀통(密通)하자 흰옷을 입고 도끼와 돗자리를 들고 궐내에 들어가 극간(極諫)하고 물러나 예안(禮安)으로 돌아갔다. 후에 충숙왕이 그 충의를 깨닫고 다시 불렀으나 사퇴하고 글을 벗삼아 늙어갔다. 이때 송나라에서 정자(程子)의 학(學)이 처음 들어오자 아무도 해득하지 못하므로 우탁선생이 문을 닫고 들어앉아 한 달을 두고 연구, 해득하여 후진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이학(理學)의 시초였다. 경사(經史)와 역학(易學), 복서(卜筮)에도 통달했으며, 후에 성균제주(成均祭酒)에 이르렀다. 세인들 그를 역동선생(易東先生)이라 불렀다. 전하는 시조로 인생의 허무를 노래한 <추간에 눈 녹인 바람...><한 손에 막대 잡고...>등 2수가 있다.<원전: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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