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비
2007. 10. 3. 23:38ㆍ삶 속의 이야기들
<평창 파크벨리에서>
가을 밤비
비가 내린다.
가을 밤 비가 내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밤 가을비는 칙칙하게 느껴진다.
염천에 퍼붓는 소낙비처럼 시원한 것도 아니고
봄비처럼 살프시 꽃잎에 내려앉는 다정스러움 그런 것도 아니다.
맑아야 할 가을날씨가 괜시리 심술 내어 찌푸둥하더니
시름시름 온종일 내리는 가을비
밤이 되어도 그칠 줄 모른다.
이제는 칙칙하다 못해 짜증도 난다.
차라리 훌훌 어딘가 떠나고 싶어진다.
사람이 없는 오솔길이라도 좋고
내리는 이 없는 간이역이라도 좋다.
밤이면 어떠랴. 엇자피 갔다가 돌아와야 할 길인데.
그리움 - 그건 아니다. 이 나이에.
차라리 외로움이라면 그런대로 괜찮다.
자식 놈들 다 떠나가고 빈 집에 앉으니 그 기분
어찌 아니 그러랴.
그리움이 아니라 외로움에 사람이 그리워지는가 보다.
나이 들면 다 그런 것이라 하지만 한 세상 살다보니 그렇다.
그것도 아니라면 백번 곱게 생각해서
때 묻은 마음 씻어 내리려는 비라면
차라리 그게 낫겠다.
슬픔, 괴로움, 이건 좀 사치스럽다.
허기야 세상 살면서 이 나이 되도록 허물없이 산 사람 있을까.
부처도 아니고, 예수도 아닌데.
이 밤 가을비는 왠지 칙칙하게 느껴진다.
시름시름 내리는 꼴이
실실 웃으며 찾아오는 빚쟁이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