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기쁨의 맛을 내기위한 양념으로 여겨라.
2006. 9. 17. 21:56ㆍ잠언과 수상록
<정선 두위산의 나무들>
고통은 기쁨의 맛을 내기위한 양념으로 여겨라.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일년 365일 하루 같이 먹는다면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 된다.
삶의 행복과 기쁨도 그렇다.
고통이 있고 슬픔이 있기 때문에
행복과 기쁨이 맛을 내는 것이다.
일생동안 오로지 고통 없는 기쁨을 생각해보라.
거기에는 도리여 무기력하고 지루한 냉기만이 있을 것이다.
맛없는 소금이 음식의 맛을 내듯이
고통은 삶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작용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고통 받는 것을 싫어하고
오로지 행복과 기쁨을 바라지만
그 대립되는 것 속에 즐거움과 희망의 의미가 살아난다.
그럼으로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곧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욕망과 무욕도 마찬가지이다.
욕망이 있기 때문에 무욕도 있는 것이다.
현상은 결국 동전의 앞뒤일 뿐이다.
고통이 기쁨이며, 기쁨이 곧 고통이다.
욕망이 무욕이며, 무욕이 욕망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활동적이고
다른 하나는 비활동적이라는 것뿐이다.
삶은 오직 양극단 사이에서만 존재한다.
어느 한쪽 극만을 선택하면 모든 것이 죽어 있는 것이 된다.
고통은 기쁨의 맛을 내기 위한 양념으로 여겨라.
고통 없이는 기쁨이 제 맛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지식들은 악연을 선지식으로 여기라 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