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 43 몇 번의 생을 받았는가?
2025. 4. 22. 10:34ㆍ증도가
몇 번을 태어나고 몇 번이나 죽었던가.
생사가 아득하여 그침이 없었도다.
<原文>
幾廻生幾廻死 (기회생 기회사)
生死悠悠無定止 (생사유유무정지)
봄이 오니 묵은 옛 가지에도 꽃은 피는데
한번 간 인생은 돌아올 줄 모르네!
북망산 가는 길 아직은 멀었다고
허깨비 같은 이 몸 매달려 부귀공명 외쳐대지만
세 치 혀 끊어지면 북망산이 바로 거기일세
부처님이 이르시길
「모든 중생의 가지가지 허망한 모습들이
다 여래의 원각묘심(圓覺妙心) 에서 나온다.」 하셨다.
중생이 어리석어 이를 알지 못하고.
허깨비 같은, 이 몸을 나로 알고
해서는 안 될 것을 하며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오욕락의 단맛에 빠져
이 삶의 진정한 목표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이렇게 한탄하신다.
「슬프다, 무릇 요즘 사람들 미혹된 지 오래여서,
자기 마음이 참 부처인 줄 모르고,
자기 성품이 참 진리인 줄 몰라서,
진리를 구하려 하면 멀리 성인들만 추앙하고,
붓다를 찾고자 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관조(觀照)하지 않는구나.」
기인(奇人)으로 불리는 한산(寒山) 스님이 이른다.
천 번 살고 만 번 죽으니 그 몇 번을 태어났던가.
나고 죽고 오고 가면서 더욱 미혹해지고 눈멀었어라.
마음속 무가(無價)의 보배를 알아채지 못하니
마치 눈먼 나귀가 다리만 믿고 앞으로 가는 것과 같도다.
*寒山 스님은 중국 국청사의 삼은(三隱) 중 한 분이다.
(본방 경전 속의 우화들/중국 천태산 고승들의 기담(3) 참조)
과거의 많은 여래도, 무수한 옛 수행자들
이 몸을 초개(草介)처럼 버리고
온갖 인욕 수행을 하며
찾던 것이 무엇이던가?
중생이 타고난 이 마음의 바탕이 아니던가?
남명천화상은 그의 저서
<남명천화상송증도가사실(南明泉和尙頌證道歌事實)>에서
이렇게 주석했다.
「이것은 영가 진각 스님이 깊이 한탄한 말이다.
보리심을 발하기 이전에 무량겁을 거치면서
한량없는 몸을 받았으니, 생사(生死)의 바다 가운데에서
스스로 출몰하며 유랑하면서도 요달할 때가 없었으며,
변천하지 않는 경계에서 부질없이 윤회를 받고,
해탈법이 없는 가운데서 허망하게 얽매임과 속박을 일으켰다.
이것은 마치 봄누에가 고치를 짓는 것과 같고
가을벌레가 등불에 달려드는 것과 같아서
두 가지 견해[二見]의 실로 무명의 본질을 얽어매고,
무명과 탐애(貪愛)의 날개로 생사의 불 바퀴를 치면서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쉬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노끈으로 묶은 새를 놓아주었다가
다시 잡아들이는 것과 같으니, 이 때문에 말하기를
‘몇 번을 태어났으며 몇 번을 죽었던가.
생사가 유유하여 결정코 정지함이 없구나’라고 한 것이다.」
삼조 승찬대사(三祖僧璨大師)가 말하였다.
「오랫동안 깜깜한 방에 있으면서
아직 자비의 광명을 보지 못하였으니,
큰 어둠 속에 오랫동안 거처하면서
어찌 새벽을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반드시 몸을 잊어버리고 도를 위하는 것이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하여야 할 것이니,
물거품과 허깨비는 기약하기 어려우니
촌음을 아껴야만 한다. 방촌(方村) 안에
저절로 법신정토(法身淨土)와 항하사 모래알 같은
공덕과 무극(無極)의 광명이 있는데,
모습을 취하다가 감응에 장애를 받아서
대면(對面)하고도 보지 못하는구나.」
부처님도 일찍이 이런 말씀 하지 않았는가.
「이 몸은 물 위의 거품 같다고 관찰하고
또한 허깨비나 아지랑이처럼 보아라.
이 몸을 이와 같이 보지 않으면
저 죽음이 닥쳐와도 보지 못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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