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24. 14:51ㆍ국내 명산과 사찰
단양 황정산 대흥사(大興寺)
단양군 대강면 황정리산로 도로를 따라가면
마치 옛 성곽처럼 둘러싸여 있는 대흥사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그 위용이 대단하여 탐방객들에게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일주문을 지나면 돌계단을 통해 천왕문을 오르게 되고,
일주문과 천왕문이 대웅보전과 일자로 연결된 가람을 만나게 된다.
(대흥사 일주문)
단양 하면 떠오르는 것이 <단양팔경>이다.
왜 단양팔경이 역사적으로 유명했는지 역사를 더듬어 보니,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과 연계된다.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은 생전에 관직을 무려 90회나 임명받았지만,
관직이 달갑지 않아 79회나 사직원을 내고 자원해서 내려갔던 곳이 바로 충북 단양군수라고 한다.
이황에게 단양은 고향인 안동과도 가까우므로 선호된 모양이다.
1548년(조선 명종 3년) 제15대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는
단양의 풍광에 매료되어 지정한 곳이 도담삼봉,
구담봉, 옥순봉 등 지금의 명소로 알려진 단양팔경이다.
뒤이어 신 단양팔경이 추가로 알려지면서 황정산 등산로가 개설되고,
황정산 아래 칠성바위 일명 소원바위로 알려진 원통암과
신라 때 대가람이었던 대흥사가 중건됨으로 사람들에 회자 되고 있다.
@해발 959.4m인 단양 황정산(黃庭山) 자락에 있는 대흥사(大興寺)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 자장율사가 양산 통도사와 함께 창건한 유서 깊은 도량이었지만
1876년 소실(燒失)되고 최근에 중창된 사찰로, 현재 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 말사로 소속되어 있다,
전성기에는 총 202칸의 당우와 불상 10여 구, 오백 나한상 등이 봉안되어 있었으며,
승려도 1,000여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876년 소실된 뒤
오백 나한상은 강원도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의 승려들이 와서 가져갔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당시 금강산에 있던 승려 497명이 8일 만에 이 절에 와서
전각이 모두 소실되고 오백 나한상만 남아 그 오백 나한상을 1구씩 등에 업고 유점사로 갔으나
남은 3구는 힘이 센 세 사람이 하나씩 더 지고 갔다.
그러나 유점사에 도착한 다음 날 그 수를 헤아려보니 3구가 모자랐는데,
함께 업혀 온 3구가 승려들의 무성의함을 원망하고 떠났다는 설화가 전한다.
(천왕문)
현재의 단양 황정산 대흥사는 대흥사 회주이신 미룡당 월탄스님의 원력으로
2001년부터 사찰을 정비하는 불사를 진행해 2016년 10월에 일주문을 비롯하여
오불을 모신 대웅보전 낙성식을 했고, 또한 대흥사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미륵전을 지었다.
부속암자로는 청련암(靑蓮庵)·원통암(圓通庵)·망월암(望月庵)·굴암(掘庵)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원통암과 청련암만이 남아 있으며,
청련암에는 이 절에서 옮겼다는 탱화가 있다.
부속암자인 원통암에는 칠성바위라는 소원바위가 유명하다.
(북방다문천왕과 동방지국천왕)
사천왕은 각자 한 방향씩을 맡고 있고 각자 일정한 지물(持物)을 손에 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사천왕 조성 시기에 따라 신라 때와 조선 후기에 조성된 사천왕의 지물은 다르다.
대흥사의 사천왕은 조선 후기의 양식을 따라, 서방 광목천왕은 탑과 창을,
남방 증장천왕은 용과 여의주를, 동방 지국천왕은 칼을, 북방 다문천왕은 비파를 들고 있다.
(남방증장천왕과 서방광목천왕)
참고로 신라 시대의 사천왕을 살펴보면,
동방을 맡는 지국천(持國天)은 제두뢰타(提頭賴吒, Dhṛita-rāṣṭra) 천왕으로 음역 되는데
건달바와 비사사(毘舍闍, Pisāka)를 시종으로 하며 손에는 비파를 드는 경우가 많다.
남방을 맡는 증장천(增長天)은 비루륵(毘樓勒, Virūḍhaka) 천왕으로 음역 되며
구반다(鳩槃茶, Kumbhāṇḍa)와 벽려다(薛荔多, Preta)를 시종으로 하고 손에는 칼을 든다.
서방을 맡는 광목천(廣目天)은 비루박차(毘樓博叉, Virūpāksa)라고 음역 되며
용과 부단나(富單那, Pūtanā)를 시종으로 하고 손에는 용을 든다.
북방을 맡는 다문천(多聞天)은 비사문천(毘沙門天)이라고도 하며
비사라바나(鞞舍囉婆拏, Vaiśravaṇa)라고 음역 되는데
야차와 나찰(羅刹, Rākṣasa)을 시종으로 하고 손에는 보탑(寶塔)을 드는 경우가 많다.
뒤에서 본 천왕문
대웅보전 마당에 조성된 5층석탑
대웅보전
대웅보전 앞에는 5층 석탑과 2기의 석등이 조성되어 있다.
대웅보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편액은 대흥사 회주인 미룡당 월탄스님의 작(作)이라고 한다.
법당에는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 관음불, 지장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약사여래와 관음보살
석가모니불을 중앙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이다.
지장보살과 아미타불
아미탱
신중탱
사시예불을 하러 스님이 들어와서 자리를 옮겨 미륵전으로 향했다.
괜시리 마음이 조급하여 사진이 많이 흔들렸다.
미륵전 가는 길
뒤돌아 본 대흥사 전각들
아직 불사중이라서 그런지 별도 전각 없이 노천에 산신상을 조성했다.
산신상 옆의 소로가 미륵전 가는 길이 나 있다. 오른 쪽 언덕에 미륵상이 보인다.
미륵전이다. 전각 없이 야외에 조성되어 있다.
입구에 <나무미륵존불>이란 석비가 세워져 있다.
미륵전은 황정산 대흥사의 백미는 미륵전이다.
산신 상이 있는 곳에서 오솔길을 따라가면 낮은 언덕에 조성되어 있다.
가는 길 중간쯤에 원통암 가는 길이 있다.
미륵전을 본전으로 삼는 사찰은 대개 법상종(法相宗)의 맥을 전승한 사찰이다.
미륵불이 출현하는 곳이 용화세계의 용화수 아래이므로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하며,
장륙존상을 모신다고 하여 장륙전(丈六殿)이라고도 한다.
대흥사는 조계종사찰로 법주사의 말사로 되어 있다.
자씨보살(慈氏菩薩)이라고도 불리는 미륵보살에 관한 경전으로는
미륵3부경으로 일컬어지는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 등이 있다.
이에 따르면 미륵보살은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나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었으나
석가모니보다 먼저 죽었으며, 현재는 보살의 몸으로
도솔천에 머무르면서 천상의 사람들에게 설법하고 있다.
미륵보살에 대한 신앙은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미륵상생경〉에 근거하는 것으로서, 현재 미륵보살이 머물면서
설법하고 있는 도솔천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상생(上生)신앙이다.
다른 하나는 〈미륵하생경〉에 근거하는 것으로서,
도솔천에서 4,000세(인간 세상에서는 56억 7,000만 년)의 수명이 다한 후에
인간 세상에 내려와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여, 3번에 걸친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할 것이라 하는 하생(下生)신앙이다.
상생신앙은 정토신앙이 흥성하면서 점차 쇠퇴했으나,
하생신앙은 역사를 통틀어 면면히 이어져 왔다.
대흥사의 이 미륵전은 미륵상 주위에 과거칠불을 조성하여 놓은 것으로 보아
하생신앙을 상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륵불을 미래의 제8부처로 모신 것이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 되면서부터
미륵불에 대한 신앙이 유포되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널리 유행하고 있다.
백제 시대에 창건된 익산의 미륵사는 미륵이 하생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함으로써
이상적 세계를 이룬다는 미륵하생신앙에 따라 세워진 대표적 사찰이며,
김제 금산사와 속리산 법주사의 미륵대불 역시 같은 맥락을 하고 있다.
@ 미륵전의 미륵불상은 과거칠불을 조상한 중앙에 입상으로 세워져 있다.
과거칠불은 1존 비바시불 · 2존 시기불 · 3존 비사부불 · 4존 구류손불 ·
5존 구나함모니불 · 6존 가섭불 · (연등불) · 7존 석가모니불이며,
과거칠불의 전법게(傳法偈)도 함께 부조되어 있다. (본방 과거칠불과 전법게 참조)
彌勒眞彌勒(미륵진미륵) 化身千百億(화신천백억)
時時示世人(시시시세인) 世人自不識(세인자불식)
미륵님 참 미륵님 부처님께서는
천백억화신을 항상 나투시어
모든 사람들에게 보이시고 계시오나
세상사람들은 스스로 알지 못하네
天地與我同根(천지여아동근) 萬物與我同體(만물여아동체)
行心同體大悲(행심동체대비) 化沙龍華淨土(화사용화정토)
하늘과 땅은 나와 같은 한 뿌리요,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
행하는 마음 동체대비면 사바세계가 미륵의 용화정토로 변하네
@2012년 4월 10일 조계사에서 중앙종무기관 교역직 스님을 비롯해
종무원과 조계사 신도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종단 출범 50주년 기념 법회를 봉행한 적이 있다.
이 법회에서 월탄스님은
“천지여아동근이요 만물여아동체로다. 행심동체대비하면 사바변화정토로다.
(天地與我同根이요 萬物與我同體로다. 行心同體大悲하면 娑婆變化淨土로다.
/ 하늘과 땅은 나와 더불어 한뿌리 생명이요,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한 몸뚱이로다.
그러므로 동체대비심으로 살 것 같으면, 사바세계가 변하여 극락정토가 되리라)”고 설하신 법어를
일주문 기둥과 여기에 석비로 조성한 모양이다.
법어에서는 <娑婆變化淨土>인 것을 미륵전 조성과 관련하여
<化沙龍華淨土>로 바뀌었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미륵전을 본후 원통암을 돌아 대흥사로 내려간다. (원통암 탐방은 후술한다.)
미륵전을 내려와 조망해 본 미륵상
대흥사를 내려가면서 전각들만 대충 둘러보았다.
정화당, 미륵당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한 전각에 미륵대흥선사, 선불장, 금호성림선원이란 3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정광당
수각에는 관음보살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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