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12. 22:36ㆍ국내 명산과 사찰
(하기휴가기행 제9부) 사명대사 생가
휴가 2일째 마지막 코스로 영산정사를 들리고 나오는 길,
해는 졌지만 낮이 길어서 그런지 땅거미는 아직 내려앉지 않았다.
도로 이정표에 <사명당 생가>라는 이정표가 있어 이번 탐방코스에는 없었지만 잠시 둘러보았다.
관광하기는 늦은 시간인데도 사명당생가와 전시관은 개방되어 있었다.
사명당 대사는 서산대사와 더불어 익히 알려진 고승이며,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승군(僧軍)을 이끌고 혁혁한 공적을 이루신 분이기도 하다.
고성 건봉사를 비롯하여 몇몇 사찰에서 사명당동상을 본적은 있지만
사명대사가 밀양 출신인줄은 여기서 내려와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 ~1610)은 조선 중기의 고승, 승장(僧將)으로 속성은 임(任),
속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송운(松雲), 당호는 사명당(泗溟堂),
별호는 종봉(鍾峯), 본관은 풍천이며, 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유정(惟政)은 사명대사의 법명이다. 법명인 유정보다 당호인 사명당(泗溟堂)으로 더 유명한 것은
이는 존경의 뜻을 담아 사명대사(泗溟大師)라고 불린다.
사명대사 유정은 경상남도 밀양에서 임수성(任守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읜 사명당은 13세에 황여헌(黃汝獻)을 사사(師事)하다가
황악산 직지사에 들어가 신묵화상(信默和尙)에게 선(禪)을 받아 승려가 되었고,
거기에서 불교의 오의(奧義)를 깨달았다. 1561년(명종 16) 선과(禪科)에 급제하고
당시의 학자·대부·시인들이었던 박사암(朴思菴), 허하곡(許荷谷), 임백호(林白湖) 등과 교제하였다.
1575년(선조 8) 선종(禪宗)의 주지로 추대되었으나 사양하고
묘향산에 들어가 청허대사(淸虛大師: 서산대사)에게서 성종(成宗)을 강의 받고 크게 각성하였다.
금강산 보덕사(報德寺)에서 3년을 지내고, 다시 팔공산·청량산·태백산 등을 유람했으며,
43세 때 옥천산(沃川山) 상동암(上東菴)에서 하룻밤 소나기에 뜰에 떨어진 꽃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문도들을 해산시킨 다음 오랫동안 참선하였으며,
46세에 오대산 영감란야(靈鑑蘭若)에 있다가 역옥에 죄 없이 걸렸으나
무죄 석방되어 금강산에서 3년 동안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순안에 가서 청허의 휘하에 활약하였고
청허가 늙어서 물러난 뒤 승군(僧軍)을 통솔하고 체찰사 류성룡을 따라
명나라 장수들과 협력하여 평양을 회복하고 도원수 권율과 함께
경상도 의령에 내려가 전공을 많이 세워 당상(堂上)에 올랐다.
1594년에 명나라 총병(摠兵) 유정(劉綎)과 의논하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를 울산 진중으로 세 번 방문하여
일본군의 동정을 살폈다. 왕의 퇴속(退俗) 권유를 거부하고,
영남에 내려가 팔공(八公)·용기(龍起)·금오(金烏) 등의 산성을 쌓고
양식과 무기를 저축한 후 인신(印信)과 전마(戰馬)를 바치고
산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였으나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명나라 장수 마귀를 따라 울산왜성에 쳐들어갔으며,
이듬해 명나라 장수 유정을 따라 순천왜성에 이르러 공을 세워
가선동지중추부사(架善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기념관 입구 충의문
1604년(선조 37) 국서를 받들고 일본에 가서 교토 후시미 성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맺고 포로가 되어 갔던 사람 3천 5백 명을 데리고
이듬해 돌아와 가의(嘉義)의 직위와 어마(御馬) 등을 하사받았다.
그때는 청허가 입적한 이듬해로 묘향산에 들어가서 스승의 영탑에 참배하고 치악산으로 들어갔다.
선조의 부보를 듣고 한양으로 달려와 배곡한 후 광해군의 서변을 지키게 하려 하였으나
병을 얻어 응하지 못하고 가야산에 들어가 입적했다.
사명대사기념관
사명대사동상
사명대사 생가
대문의 편액은 <분충서난문(奮忠紓難門)>이다.
<분춘서난>은 나라에 대해서 충성을 다하고 어려움은 풀어준다는 의미다.
안채는 숙청사란 편액이 걸려있다.
송운대사구택(松雲大師舊宅): 송운은 사명대사의 호(號)다.
육영당(毓英堂)인데 꽃봉우리를 키우는 집이라 뜻인데 연화(蓮花) 즉 불심을 키운다는 의미인가?
山居集句四2(산거집구사2)-四溟大師(사명대사)
閉門春盡綠煙消(폐문춘진녹연소) : 문 닫으니 봄은 가고 푸른 기운 사라지니
眞性如空不動搖(진성여공부동요) : 진성은 허공 같아 움직임이 없도다
世出世間俱打了(세출세간구타료) : 세상을 벗어나고 세상에 있는 것 모두 떨쳐버리니
那知今夕與明朝(나지금석여명조) : 오늘 저녁 일 내일 저녁 일을 어찌 알리오
宿般若寺(숙반야사)-四溟大師(사명대사)
古寺秋晴黃葉多(고사추청황엽다) : 옛 절에 가을 날씨 맑으니 나뭇잎이 누렇게 물들고
月臨靑壁散棲鴉(월림청벽산서아) : 달이 푸른 벽에 비치니 잠자던 까마귀들 흩어진다
澄潮煙盡淨如練(징조연진정여련) : 맑은 호수에 연기 걷혀 비단같이 맑고
夜半寒鐘落玉波(야반한종락옥파) : 밤이 깊어가니 차가운 종소리 옥 물결에 떨어진다
추헌야좌(秋軒夜坐)-사명대사(四溟大師)
獨坐無眠羈思長(독좌무면기사장) : 홀로 앉으니 잠이 오지 않아 나그네 시름만 깊은데
數螢流影度西廊(수형유영도서랑) : 반딧불 몇 마리 그림자 흘리며 서쪽 회랑으로 지나간다
崇山月出秋天遠(숭산월출추천원) : 숭산에 달이 떠니 가을 하늘 멀구나
一夜歸心鬢已霜(일야귀심빈이상) : 온 밤 돌아가고픈 마음에 귀밑머리 이미 희어졌구나
山居集句四3(산거집구사3)-四溟大師(사명대사)
白雲何計是生涯(백운하계시생애) : 흰 구름 속의 생애가 어찌 생애라하리오
朝抱陳編至日斜(조포진편지일사) : 아침에 오래된 책 잡으면 해질 때까지 가는구나
門外啼鵑天寂寂(문외제견천적적) : 문 밖에 두견새 우는데 날은 적적하고
東風吹落刺桐花(동풍취락자동화) : 봄바람 불어 오동나무꽃을 떨어뜨리는구나
過邙山(과망산)-四溟大師(사명대사)
太華山前多少塚(태화산전다소총) : 태화산 앞 수 많은 무덤들
洛陽城裏古今人(낙양성리고금인) : 고금의 낙양성 사람 무덤이라
可憐不學長生術(가련불학장생술) : 가련하다, 무슨 일로 장생술을 못 배워
杳杳空成松下塵(묘묘공성송하진) : 아득한 세월 덧없이 소나무 아래 흙먼지로 되었는가
萬瀑洞(만폭동)-四溟大師(사명대사)
此是人間白玉京(차시인간백옥경) : 이곳은 인간의 백옥경이요
琉璃洞府衆香城(유리동부중향성) : 유리동의 관청이요 온갖 향기의 성이구나
飛流萬瀑千峰雪(비류만폭천봉설) : 날아흐르는 온갖 폭포는 온 산봉우리의 눈이라
長嘯一聲天地驚(장소일성천지경) : 길게 한번 소리치니 천지가 놀라는구나
~제10부는 기네스북에 오른 국내최대 동굴법당 의령 일붕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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