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7. 23:21ㆍ국내 명산과 사찰
황금 밀탑(密塔)의 전설이 전해오는 괴산 낙영산 공림사(1/2)
낙영산 자락에 위치한 괴산 공림사(公林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로
신라 48대 경문왕(景文王 861~874) 때 자정선사(慈淨禪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왕은 선사를 흠모하여 <벽산삼한상삼한삼중대광사>라는 칭호를 부여하여 국사로 불렀으나
자정선사는 국사의 지위를 사양한 뒤 그곳에 초암을 짓고 살았는데,
그의 덕을 추모한 왕이 절을 세우고 <공림사(空林寺)>라는 편액을 내린 사찰이다.
(空林寺가 현재의 공림사(公林寺)로 언제 개명되었는지는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그후 사찰은 쇄락하자, 나옹(懶翁), 무학(無學)의 법맥을 이어 조선조의 불교 뿌리를 심어 지킨
함허득통(涵虛得通:1376~1433) 선사가
1399년(정종1년) 명산대천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폐사가 된 이 절에 이르러
법당과 요사채 등의 모든 건물을 새로 중창하였고,
1407년(태종 7) 왕실의 자복사찰(資福寺刹)을 명찰(名刹)로 교체하라는 조정의 명에 따라 공림사도 자복사찰로
지정되었다. 고려말· 조선초에는 선교공의 통합 당시 11종과 7종이 있었는데 조선 초기의 7종은
시흥종 · 자은종 · 조계종 · 중신종 · 천태종 · 총남종 · 화엄종 이다.
공림사는 당시 자은종(慈恩宗) 소속의 사찰이었다. 세조도 이곳에서 참배하였다.
1593년 임진왜란시 왜병의 방화로 여러 건물이 불탔으나,
대웅전만은 갑자기 바람이 반대쪽에서 불어와 보존될 수 있었다.
인조 때 다시 중창하였으며, 1688년(숙종 14) 사적비를 세웠다.
1720년에 중창하였으며, 1727년(영조 3)에는 도형(道炯)이 중건하였다.
6·25전쟁 전에는 대웅전·승방·영하문(暎霞門)·문루·행랑채·방앗간 등 8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6·25전쟁 뒤 공비의 잦은 출몰로 영하문과 사적비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1965년 법당과 요사채를 재건하였고, 진공당 탄성대종사(眞空堂呑星大宗師)에 이르러
1981년부터 1994년까지 대대적 중창을 일으켜 대웅전을 비롯하여
감인선원(堪忍禪院)과 선심당(禪心堂)을 불사를 일으키고
1992년 적광탑과 석가탑을 조성하고 관음전과 요사체를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공림사(空林寺) 사찰 앞에는 작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그 위로 20여 그루에 달하는 고목군락이 조성되어 있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느티나무군락을 조성했는지는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풍성한 여름을 기다리는,
아직은 그 앙상한 가지들이 1,000년 고찰답게 한결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멀지않아 푸른 잎들이 가지마다 돋아나고 연못에 연꽃이 피어 난다면 더 멋진 풍경을 자아내리라 생각해 본다.
가운데 적광탑이다, 적광탑을 중심으로 뒤는 대웅전, 좌측은 감인선원, 우측은 세심당이 배치되어 있다.
감인선원
<감인서원(堪忍禪院)주련>
半榻淸風半榻蓮(반탑청풍반타련)
一江秋水共長天(일강추수강장천)
棒喝齊施猶未宗(봉갈제시유미종)
三玄三要絶狐踪(삼현삼요절호종)
風吹碧落浮雲盡(풍취벽락부운진)
月上靑山玉一團(월상청산옥일단)
萬里紅雲窄碧海(만리홍운착벽해)
一天白日繞須彌(일천백일요수미)
자리의 반은 맑은 바람이요 반은 연꽃향이더니
강에 비친 가을물과 긴 하늘은 한빛으로 푸르고
방과 할을 함께 쓸 땐 종지 아직 막연터니
삼현구와 삼요구로 여우의심 끊어졌네.
바람 불어 구름 걷히니 푸른 하늘뿐
청산에 달이 뜨니 옥구슬 같고
만리에 뻗친 붉은 노을 푸른 바다 꿰뚫었네.
하늘 가득 밝은 태양은 수미산을 두르네.
범종각
범종은 1776년(영조 42)에 주조된 것이다.
적광탑 좌우에는 해태상이 조성되어 있다.
선심당
<선심당(禪心堂)주련>
爲他爲己雖微善 (위타위기수미선)
皆是輪回生死因(개시윤회생사인)
願入松風蘿月下(원입송풍라월하)
長觀無漏祖師禪(장관무루조사선)
三日修心千載寶(삼수심천재보)
百年貪物一朝塵(백년탐물일조진)
남 위한다거나 날 위한다거나 비록 작은 선도
돌고 돌며 나고 죽는 원인이 될 뿐
솔바람 삿갓 쓰고 달빛 속에 들어
셈없는 조사 선법 오래오래 관할지어라
사흘 닦는 마음은 천년을 두고 보배요,
백 년 동안 물건을 탐내도 하루아침의 티끌인 것을.
대웅전
<대웅전주련>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편시방중)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
汪洋覺海渺難窮(왕양각해묘난궁)
白玉毫輝充法界(백옥호휘충법계)
紫金儀相化塵寰(자금의상화진환)
부처님의 몸은 온 세상에 두루하시니
삼세 여래가 모두 같은 한 몸일세
크나큰 원력은 구름같이 항상 다함이 없어
넓디넓은 깨달음의 세계 아득하여 끝이 없네.
백호광의 대광명 법계에 충만하여
자금광의 상으로서 오탁에 빠진 중생 제도하시네.
@진환(塵寰): 마음에 고통을 주는 복잡하고 어수선한 세상을 의미하는 말로
곧 오탁(五濁)에 고통받고 있는 중생세계를 의미함.
대웅전 안에는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모시고 협시불로 대세지보살과 관음을 모셨다.
삼불 모두 닫집을 세워 천년고찰답게 그 장엄함이 돋보인다. 삼존불은 각각의 닫집으로 화려하게 장엄되어 있다.
석가모니불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신중탱
조사전 오르는 길
수령이 천년이 넘는 느티나무
종무소 뒤편 풍경
기와로 쌓은 담이 운치가 있다.
진공당 탄성선사비와 부도탑. 뒤편에 승탑이 있다.
조사전. 진공단탄성대종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진공당 탄성스님(1930~2000.6.8.)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10.27 법난 직후
정화중흥회의 상임위원장을 맡아 종단 안정의 기틀을 마련하신 분이다.
그후 1994년에는 개혁회의 상임위원장 겸 총무원장을 맡아 종단 개혁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스님은 1930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으며 속명(俗名)은 박재중(朴在中)으로
〈초발심자경문〉에 나오는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사흘 닦는 마음은 천년을 두고 보배요, 백년동안 물건을 탐내도 하루아침의 티끌)이라는
구절을 듣고, 출가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 구절은 선심당 주련에도 걸려있다.
진공당 탄성대종사 진영
<탄성대종사 임종게>
山色人我相(산색인아상)
流水是非聲(유수시비성)
山色水聲離(산색수성이)
聾啞居平生(롱아거평생)
산 빛도 아상을 드러내고
흐르는 물도 시비의 소리네
산빛도 물소리도 떠나서
귀머거리 벙어리로 평생을 지내리.
삼성각
좌로부터 산신탱, 칠성탱, 독성탱
~2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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