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19. 21:20ㆍ국내 명산과 사찰
(안성기행) 꺽정불을 모신 가람 안성 칠현산 칠장사(2/2)
@칠장사는 유난히 도둑과 인연이 깊은 사칠이다.
칠장사의 설화에 나오는 7인의 악인을 구제했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의적이라고 일컫는 임꺽정이며
고구려를 찬탈하여 태봉(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와도 인연을 맺은 사찰이기 때문이다.
궁예는 열살 때까지 여기서 활을 배웠다고 한다.
지금은 이곳은 오지로 밀려나 있지만 옛적에는 장호원 음성 문경새재를 넘어 문경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강원도와 충청도, 경상도를 가려면 여기를 통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오가는 길손이 많은 탓에 마을은 번창했지만 당시의 시대상황은 일반백성들은 반상의 차별과
관리들의 가렴주구로 빈부차이가 극심했던 시대라 도적의 무리가 행행했고
또 그들의 은신처로서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교통이 불편하여 산꾼을 제외하고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다.
<원통전>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다.
관음보살의 협시불을 모실 경우는 대개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을 모시는 데
칠장사는 해상용왕은 나타나 있지 않고 일반사찰의 원통전에 묘사되는 남순동자상과는 달리
보관이 아닌 관모를 쓴 동자상이 좌우로 합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원통전의 천장은 여느 사찰과 다르게 화려하게 조성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원통전주련>
補陀山上琉璃界(보타산상유리계)
보타산 위 유리세계에 머무시는
正法明王觀世音(정법명왕관세음)
정법명왕이신 관세음보살님
影入三途利有情(영입삼도이유정)
그 그림자 삼도에 들어가 유정(중생)을 이롭게 하며
形分六道曾無息(형분육도증무식)
그 모습 육도에 나누어 일찍이 쉼이 없으시네
@원통전의 이 주련은 ‘관음예문영가(觀音禮文詠歌)’에서 따온 것이다.
칠성탱화
염라대왕탱화인듯 한데 명부전이나 지장전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원통전의 천장탱
<명부전주련>
地藏大聖威神力(지장대성위신력)
恒河沙劫難說盡(항하사겁난설진)
見聞瞻禮一念覺(견문첨례일념각)
利益人天無量事(이익인천무량사)
지장보살 위대하신 신통함은
억겁을 두고 설명해도 다하기 어려워라
보도듣고 우러러 예배의 일념으로 깨달았네
사람과 하늘에 이익되는 길 헤아릴수 없구나
국사전
<혜소국사와 7인의 도적설화>
칠장사는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도 하지만 안성 출신 혜소 국사(慧炤國師)를 기념하기 위하여
고려 충렬왕때(1308년) 창건한 절이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고려 때 고승 혜소국사가 칠현산에 홍제관(弘濟館)이라는 수행처를 세웠을 때 인근에 도둑 일곱 명이 살고 있었다 한다.
그 중 한 명이 샘 가에 갔다가 금 바가지를 보고 얼른 품속에 감추어 집에 와서 보니 깨진 바가지 뿐 이었다.
이에 놀란 도둑이 다른 도둑들에게 그 일을 고백하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같은 경험을 고백하는 지라
자신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혜소국사가 신통력을 보인 것을 깨닫고 혜소국사의 가르침을 받아
어진 사람이 되었다하여 7명이 도를 깨우친 산이라 하여 이 산을 칠현산이라 부르고
칠장사도 한때 칠현사라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삼성각
중앙에 치성광여래를 배치하고 7여래와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배치한 칠성탱화에
그 칠성탱 앞에 불상으로 지물(持物)로 법륜(法輪)을 들고 있는 자미대제를 중앙에 모시고
그 아래에 칠원성군을 배치한 것이 여느 사찰의 칠성탱과는 다르게 탱화와 불상을 매치시키고 있다.
삼성각 안에는 산신탱과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탱이 함께 모셔져 있다.
<칠성탱화>
사찰에서는 칠성각(七星閣)을 따로 건립하여 이를 봉안하는 것이 관례인데 칠장사는 삼성간안에 두었다.
원래 불교에서는 칠성신을 신중의 하나로 보고 신중탱화(神衆幀畫) 속에서만 묘사하였다.
그러나 칠성에 대한 신앙적 기능이 조선 초기부터 강화되면서 독립된 신앙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신중탱화에서 분화된 별개의 칠성탱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 칠성 신앙의 대상은 칠여래(七如來)의 화현(化現)인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칠여래의 증명을 거친 칠성신이다. 따라서 칠성탱화를 그릴 때에는 칠여래와 함께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반드시 묘사하게 된다. 이 탱화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만
중앙에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두고 좌우보처로서 일광보살(日光菩薩)·월광보살(月光菩薩) 그리고 상단 좌우에 칠여래, 하단 좌우에 칠원성군을 도설하는 구도를 보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칠성탱화가 널리 봉안된 것은 칠성의 주불(主佛)인 치성광여래가 약사여래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자식이 없는 부인이나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부인, 자식의 수명을 비는 신도들에게서 큰 인기를 모았다.
국내에 있는 대표적인 칠성탱화로는 1749년(영조 25년)에 제작된 천은사(泉隱寺) 탱화와
1895년에 제작된 선암사(仙巖寺) 탱화를 꼽을 수 있다.
칠장사의 이 탱화는 불상과 매치시킨 것이 이채롭다.
산신탱
독성탱
<영각과 부도군>
사찰을 위히 땅을 보시한 두 부부를 위한 전각으로 공덕비와 함께 조성되었다고 한다.
부도군이다, 설명서가 없어서 누구의 부도인지 알 수 없다.
일주문 들어가기 전에 사적비와 당간이 있다.
안성 칠장사 당간(安城 七長寺 幢竿)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당간이다.
1973년 7월 10일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다.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둔다.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은 ‘칠장사’에서 약 700m 앞 길가에 서 있는데, 남아있는 당간 가운데 드물게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총 높이 11.5m로 15마디의 원통형 철통이 연결되어 있으며, 아래부분은 화강암으로 된 좌 ·우 기둥이 버티고 있다.
흙으로 덮여 잘 드러나지 않는 바닥은 네모난 구멍을 마련하여 당간을 꽂았다.
양쪽 기둥은 조각이 없는 소박한 형태로 끝을 둥글게 처리하였다.
철당간은 위로 오를수록 크기가 줄어들고 각 이음새부분은 마치 대나무마디처럼 형성되어 있다.
원래는 원통모양의 철통이 30마디를 이루었다고 하며, 칠장사의 지형이 배(舟)모양과 같아
돛대의 역할을 하도록 이 당간지주를 세웠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칠장사 외에는 청주용두사지와 공주갑사에서만 당간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매우 희귀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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