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3. 14:45ㆍ국내 명산과 사찰
(안성기행) 안성의 자복사찰 서운산 석남사
@청룡이 서운(瑞雲:상스러운 구름)을 타고 내려왔다고 하는 안성 서운산.
해발 547m인 그 서운산 동북쪽 자락에 위치한 석남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용문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20년( 680년)에 석선(奭善)스님이 창건하였다.
문성왕 18년 (876년) 신라 구산선문 가지산파의 2대 조사인 염거선사(廉居禪師)가 중수하고,
고려 때에는 광종(光宗)의 아들이며 왕사였던 혜거국사(惠居國師)가 중창하여 사세를 떨쳤다.
조선 초기에는 숭유억불 정책의 하나로, 전국에 있는 사찰들을 통폐합할 때
안성군을 대표하는 자복사찰로 선정될 만큼 전국적인 명찰이었으며,
세조가 친필 교지를 내려 승려들의 부역을 면제해준 사찰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렸으나 효종 때(재위 1649∼1659) 석왕사의 해원선가 중수하여 사세를 확장했으며,
1732년(영조 8)에 다시 중수했다.
문화재로는 석남사 대웅전(경기유형문화재 108)을 비롯하여
석남사 영산전(보물 823), 석남사 마애여래입상(경기유형문화재 109) 등이 있다.
@@자복사찰(資福寺刹)이란 조선시대 초기에 불교를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종파로 나뉘어있던 전국의 사찰을 각 지방별 주요사찰 일부만 남기고
선종(禪宗)과 교종(敎宗) 양종으로 구분하여 통폐합을 하는 과정에서
왕실의 안녕과 국가의 국운융창을 비는 것을 목적으로 선정된 사찰이 자복사찰이다.
석남사는 이런 자복사찰로 안성을 대표하여 선정 되었던 것입니다.
혜거(惠居)국사 소고
@혜거국사는 고려 때 승려로서 899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나 16세 때 오심(悟心) 선사 문하에서 출가한 분이다.
승은 박(朴)씨. 이름은 지회(智回)다. 문하에 숭담 대선사, 보욱 대선사, 정관 대선백, 충혜 대교석덕 등
100여명의 제자를 두었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가 3번을 초청했으나 거절했으나 정종때 왕사로 책봉되었다.
948년 홍화사에서 전경법회(轉經法會)를 개설했고 962년 광명사에서 인왕반야회를 개설했다.
968년에는 궁궐내 경운전에서 백고좌법회를 개설해 경전을 강설하기도 했다.
970년 수원 갈양사의 중창하고 주석처로 삼았다. 광종25년 때인 974년 법납 61년, 세수 76세로 입적했다.
생전 변지무애, 원명묘각, 홍복우세 등의 시호를 받았으며,
994년 성종의 명에 의하여 비문을 건립하고 탑호 보광(寶光), 시호 홍제존자(洪濟尊者)로 칭했다.
석남사 금강루에는 한글 주련이 걸려있다.
돌계단 좌측은 종무소로 사용하는 정수원이고 가운데는 대웅전, 그 옆 건물은 영산전이다.
正受院(정수원) 에는 긴 주련이 걸려있지만 이 귀절이 눈이 간다.
莫爲無心云是道(막위무심운시도)
無心猶隔一重關(무심유격일중관)
무심이 도라고 이르지 말라
무심에는 여전히 한 겹의 관문이 막혀 있도다..
1978년 영산전 앞에 위치한 대웅전을 영산전 뒤의 가장 높은 지대에 새로이 터를 조성하여 이건(移建)하였다.
대웅전 이건 이전의 배치를 살펴보면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으로 2기의 쌍탑이 위치하고
대웅전보다 한단 아래에 중정이 놓였으며 현재의 요사채가 중정을 감싸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영산전은 주불전인 대웅전보다 뒤에 위치하여 부불전으로의 역할을 하였다.
@영산전(靈山殿)
영산전은 석가모니와 팔상탱화(八相幀畫: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여덟 시기로 나누어 그린 탱화)를 봉안한
사찰의 중요 당우 중 하나로 팔상의 탱화를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영산전을 팔상전(捌相殿)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사찰 중 규모가 큰 절에는 거의가 이 전각을 두고 있으며,
특히 천태종사상(天台宗思想)을 계승한 사찰에서는 영산전을 본전으로 삼고 있다.
영산은 영축산(靈鷲山)의 준말로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영산불국(靈山佛國)을 상징한다.
영축산정은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곳으로 불교의 성지(聖地)를 영산전을 통하여 현현시킨 것이며,
이곳에 참배함으로써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불국토인 영산회상에 참배하는 것이 된다.
영산전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갈라보살(羯羅菩薩)과 미륵보살을 협시(脇侍)로 봉안하거나,
사찰에 따라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을 협시불로 모시기도 하며
불상의 후불탱화(後佛幀畫)로는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하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를 봉안 하고
그 주위에는 8폭의 팔상도(八相圖)를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석남사의 영산전은 영산전 안내서에는 삼존불을 모셨다고 하는데 석가모니불과 500 나한상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후일 불사를 다시 할 모양인 것 같다. 추측컨대 대웅전에 모신 삼존불이 영산전에 모셨던 삼존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영산전 주련>
塵墨劫前早成佛 (진묵겁전조성불) 부처님은 일찍이 진묵겁 전에 성불하시어
爲度衆生現世間 (위도중생현세간) 중생을 제도하려 이 세상에 오셨서
巍巍德相月輪滿 (외외덕상월륜만) 거룩하신 지혜덕상 만월처럼 충만하여
於三界中作導師(어삼계중작도사) 삼계에서 가장 높은 삼계도사 되셨네.
@塵墨劫(진묵겁): 티끌이 쌓여 먹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영산전은 팔작지붕의 다포계 건물로 기단은 자연석을 허튼층쌓기방식으로 1단에서 2단을 구성하였고,
바닥은 강회로 마감하였다 자연석의 초석은 그랭이질로 가공된 기둥이 높이는 자리만 평평하게 다듬어 사용하였고,
우주는 평주보다 약간 굵게 만들었다. 기둥머리는 다포계의 법식에 따라 창방으로 결구하고
그 위에 평방이 올려져있다. 평방위에는 공포가 얹혀지는데 매 칸마다
1구의 공포가 사이에 있게 되는 가장 간단한 기법을 하고 있다.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둔 겹처마로 추녀 부근의 결구방식은 선자연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말굽서까래 방식에 가까운 구성을 하였다.
1940년에 일제에 의해 시행된 보수공사로 인하여 지붕의 가구법이 변화되었다 한다.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비.
대웅전
<대웅전 주련>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변시방중)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
汪洋覺海渺難窮(왕양각해묘난궁)
부처님 몸 두루하여 시방세계 충면하고
삼세의 부처님은 모두가 한 몸일세
넓고 크신 자비원력 항상하여 다함이 없고
넓고 넓은 깨침의 바다 헤아리기 어렵다네
칠성탱화
@ 신중탱화(神衆幀畵)
이 신중탱화에서 가운데에 이글이글 화염을 뿜는 신중은 예적금강(穢跡金剛)이다.
이 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현(化現)이라고 하는데 부정금강(不淨金剛), 화두금강(火頭金剛)이라고도 불린다.
더러운 것을 없애므로 예적부정(穢跡不淨)이라 하고, 온 몸에서 지혜의 불길을 내뿜기에 화두(火頭)라고 한다.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삼면(三面), 삼목(三目), 팔비(八臂)로서 독사를 몸에 감거나 잡고서 법륜을 굴리면서
온 몸에 불길이 치솟는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윗쪽 좌우에 두광(頭光)을 두룬 분은 각기 범천왕(梵天王)과 제석천(帝釋天)이고,
하단의 왼쪽에 두광을 두룬 신중은 위타천(韋駄天)이라 하는 동진보살(童眞菩薩)이다.
대개의 신중탱화에서는 이 신장을 중앙에 모신다.
@영단에 모셔진 석남사 회주 원공당(圓空堂) 정무대종사(正無大宗師)
「원공당 정무대종사는 1931년 전북 군산에서 출생해 1958년 전북대 수의학과를 졸업했 다.
졸업하던 해 전강스님을 친견하고 군산 은적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수행자의 길로 들어섰다.
1965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좌측에는 사자를 인도한다는 나무대성 인로왕보살을, 우측에는 초면귀왕비증보살비다.
@칠성탱화(七星幀畵):
법륜(法輪)을 들고 계신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 좌우에서 협시하고,
그 좌우엔 칠여래가(七如來)가 합장한 모습으로 시립해 있고, 하단에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이 일렬로 시립한 모습이다.
칠원성군이 여래로 화현하신 분이 칠여래이다.
산신탱
대웅전의 닫집과 천장
대웅전의 벽화, 십우도가 그려져 있다.
목우
견우
견적
반본환원
영산전을 내려다 오면서 본 전경
석남사는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야사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단종이 사사된 후 관노의 신분으로 추락한 정순왕후를
신숙주가 자기의 첩으로 삼고자 세조에게 건의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피하기 위해 석남사로 와서 불가(佛家)에 귀의하여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세조는 비구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석남사 스님들에게는 부역을 면제 한다."는 교지를 내렸다고 한다.
석남사 마애불은 높이 7m, 너비 6.5m 정도의 자연암벽에 양각된 입상(立像)으로서
불상의 크기는 높이 4.5m, 너비 2.8m이며, 얼굴은 암벽의 균열로 인해 마멸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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