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기행(1/8) 우리 땅 독도

2015. 8. 11. 00:21국내 명산과 사찰

 

 

 

울릉도 기행(1/8) 우리 땅 독도

울릉도 여행은 일정잡기와 날씨 등 번거로움이 많아 지금껏 망설이든 나의 여행코스 중 하나다.

언제나 빡빡한 일정으로 휴가철에만 움직일 수 있는 나로서는 행여 날이라도 나쁘면

섬에서 발이 묶이지나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큰마음 먹도 떠난 울릉도.

새벽 3시 서울에서 출발한 여행사 관광버스는 4시간 가까이 어둠 속을 질주하여 묵호항에 도달했다.

여행사에서 지정한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는 바로 울릉도항 여객선을 탔다.

묵호항에서 울릉도 도동항까지는 무려 4시간. 다행히 가는 동안 하늘은 흐렸지만 바다는 고요했다.

(도동항)

 

도동항에서 현지 가이드와 미팅한 후 방을 배정받고 점식 식사를 한 후 다시 선착장으로 나갔다.

오늘은 파고(波高)가 높지 않아 내일 일정으로 잡힌 독도관광을 당겼다고 한다.

4시간을 배를 타고 왔는데 다시 2시간을 더 배를 타야했다.

왕복으로 따지면 오늘 하루 동안 8시간을 배안에 보내야 하는 셈이다.

지루하고 피로가 엄습했지만 그래도 우리 땅 독도를 간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독도항 접안은 예상치 못한 너울성 파도가 잦기 때문에 접안이 안 되는 날이 태반이라

오늘은 확률이 높아 그리 정했다고 가이드가 귀뜸해 준다.

성숙기라서 사전에 이미 추가 요금까지 지불한 나로서는

오늘 따라 내내 바다 날이 좋았기에 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가이드의 말이 현실이 되었다.

 

 

독도항에 이르기까지 선실 안에 갇혀 있다가 독도항에 이르러 접안을 한다는 선장의 코멘트.

약간 들뜬 마음으로 선내에서 하선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다시 알리는 날벼락 같은 소리.

너울성 파도로 접안을 포기하고 유람선관광으로 대치한단다.

유람선 관광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선내의 사람들이 갑판으로 우루루 몰려 나간다.

유람선 관광이라는 말은 갑판으로 나아가 섬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느긋하게 앉아 있다가 따라 나가니 좁은 갑판에 선객들이 이미 인산인해다.

무려 300여명에 가까운 달하는 사람이 좁은 갑판에 몰리니 사람에 치어 발 디딜 틈도 없다.

카메라를 들이밀 공간도 없다. 갑판에서의 근접촬영은 엄두도 못 내고 풍경과 멀어지면 줌으로 댕겨 독도를 촬영했다.

설상가상으로 흐린 날씨에다 먼 거리에 빛도 역광(逆光)이다.

멋진 독도 풍경을 담아보겠다는 나의 푸른 꿈은 선두에 부서지는 하얀 거품이 되었다.

 

 

 

 

 

독도로 가는 사동항의 유람선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한 독도는 대한민국 정부 소유(관리청: 국토교통부)의 국유지로서

 천연기념물 336(198211월 문화재청)로 지정되어 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 외에 89개의 부속도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면적은 187,554(동도 73,297, 서도 88,740)이다.

울릉도에서는 87.4, 동해에서는 243.8, 죽변에서는 216.8, 포항에서는 258.3,

부산에서는 348.4, 일본의 오끼나와 섬에서는 157.5거리 위치한다.

 

@ 독도(独島)라는 명칭은 한국어와 중국어 화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이다.

인도유럽어 권에서는 리앙쿠르 바위섬(李安窟, 프랑스어: Rochers Liancourt, 영어: Liancourt Rocks),

일본어 권에서는 다케시마(일본어: 竹島 たけしま)라고 부르고 있다.

20세기 초까지는 독도(: '돌섬'이라는 뜻), 석도(石島) 또는 마쓰시마(松島)라고 불리었다

 

 

@우리의 고문헌에서는 우산도(512), 삼봉도(1471), 가지도(1794), 석도(1900), 독도(1906)

여러 이름으로 불려 왔던 섬이다.

 

 

@우산도(于山島)는 가장 오래 동안 독도를 부르던 명칭이다.

삼국사기,고려사,세종실록,동국여지승람등의 옛 문헌에서 독도를

우산으로 기록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간혹 ()’의 표기를 잘못 읽어서 ()’, ‘()’, ‘()’ 등으로

표기된 사례도 있지만 ()’가 정확한 표기이다.

 

조선 성종 때에는 삼봉도(三峰島)라 불렸다. 섬이 세 개의 봉우리로 보인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성종실록(1476) 15에 기록되어 있다. 정조실록(1794)에는

가지도(可支島)에 가보니 가지어가 놀라 뛰어 나왔다라는 기록에서 독도의 또 다른 이름인 가지도를 확인할 수 있다.

가지어는 물개의 일종인 강치를 우리말 가제로 음역한 것으로, 독도에는 강치가 많이 서식한다.

최근에 이를 기리기 위해 독도에 강치 조상(彫像)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는 울릉도의 관할구역의 하나로 석도(石島)’가 등장한다.

여기서 석도란 독도를 말하는 것으로, ‘()’의 한글 표현이 이고,

돌의 남해안 사투리인 이 현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행정지명으로서 독도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다.

현재는 돌섬독섬으로 발음되면서 독도(獨島)’로 표기가 되었는데,

지금도 울릉도 주민들은 독섬돌섬을 혼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명치시대 이전에는 독도를 마쓰시마松島,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라 부르다가,

1905년 영토편입 이후부터는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르고 있다.

서양에서는 섬을 발견한 선박의 명칭을 따라 이름을 붙였는데,

1849년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꾸르호는 리앙꾸르 암(Liancourt Rock)’으로 명명하였고,

1885년 영국함선 호네트호 또한 호네트 암(Hornet Rock)’으로 명명하였다.

 

 

 

 

독도항 눈으로 보기에는 그리 너울이 높지 않은 것 같은데 입도는 할 수 없었다.

 

 

 

 

 

 

 

 

 

 

 

 

 

 

 

 

 

독립문 바위(좌측), 삼형제굴바위(중앙)

 

 

 

가운데 바위가 서도 탕건봉

 

 

(독립문바위)

 

해안경비대로 가는 길 멀리서 보아도 가파르다.

 

촛대바위

 

 

 

 

 

 

 

 

 

 

 

 

 

 

 

 

 

 

 

 

 

 

 

 

 

 

 

 

 

 

 

 

 

 

 

아래 사진은 도동항의 야경과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