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의 까치들(2/2)

2014. 1. 10. 20:36포토습작

창경궁의 까치들(2/2)

 

지난번 <창경궁의 까치> 일편에 못다 올린 사진을 포스팅 하면서 무언가 허전하여 까치에 얽힌 설화를 조사해 보았다. 까치는 고대로부터 우리민족과 친근한 야생조류로 전국에 서식하지만 창경궁 춘당지에 이상하게도 많이 보인다. 뿐만 아니라 까치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에도 여느 조류와 달리 설화도 많은 조류다. 일례로 바다에서 떠내려 온 궤짝하나를 열어보니 한 아이가 나왔다고 하는 석탈해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 아이가 바로 신라 3대 왕인 석탈해인데, 그 때 까치가 울며 함께 따라왔기에 까치 작(鵲)자의 앞변인 석(昔)자를 따서 석탈해라고 했다고 한다.  

 

 

 

까치의 설화를 이야기하자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가 오작교다.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위해 까치가 다리를 놓아 주었다는 오작교. 이와 관련하여 남원 광한루에서의 성춘향과 이 도령의 로맨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에도 이런 유의 이야기가 있다. 중국의 세시풍습 중 하나인데 결혼식이나 잔치를 할 때 빨간 색종이로 까치를 만들어 창문에 붙여놓는다고 한다. 이는 까치가 남녀 간의 인연을 이어주는 길조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까치는 천적(天敵)이 없다고 한다. 중매쟁이는 사람과 척을 지지 않는다고 하던가. 

 

 

 

 

 

 

 

 

 

 

 

 

 

 

 

 

 

 

또한 전래되는 중국 민담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가지로 부연 각설되어 전해지고 있기도 하는 이야기인데...

어느 선비가 길을 가다가 까치둥지에 있는 까치새끼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갔더니 큰 뱀 한 마리가 까치새끼를 잡아 먹으려고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선비는 측은한 마음에 막대기로 뱀을 죽여 버리고 까치를 살렸다. 그러고 나서는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숲속에서 길을 잃고 어느 허물어진 절간을 찾아 노숙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 밤중에 가슴이 답답하여 깨어보니 큰 뱀 한마리가 자기 몸을 칭칭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위는 어둡고 사람 흔적도 없는 곳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데 뱀이 선비에게「어제 네가 죽인 뱀은 바로 나의 남편이다. 새벽까지 세 번의 종소리가 나지 않으면 너를 죽여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고 했다. 새벽이 밝아오기는 아직 한참 멀었고, 이 허물어진 절간에서 사람이 어디 있어 종소리를 내랴 싶어 선비는 체념을 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뎅~ 뎅~ 하고 종소리가 울리지 않는가. 그 종소리를 들은 뱀은 이것도 인연인가 보다 하고 선비를 놓아주고 떠나갔다고 한다. 목숨을 건진 선비는 날이 밝자 종소리가 난 곳을 찾아보니 허물어진 빈 종루가 있고 그 밑에 세 마리의 까치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죽어있었다. 어제 살려준 새끼까치가 어미와 함께 종에 머리를 부딪쳐 종을 울렸던 것이다. 죽음으로서 보은한 것이다. 사람들은 원수진 사람이나 미운 사람은 쉽게 잊지 못하면서도 받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는 데 까치는 죽음으로서 보은 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까치를 길조로 여기고, 보은할 줄 아는 영물(靈物)로 전해지고 있다.

 

 

 

 

 

 

 

 

 

 

 

 

 

 

 

 

 

 

 

 

 

 

 

 

 

 

 

 

 

 

 

 

 

 

 

 

원효대사는 신라의 고승으로 의상대사와 더불어 신라불교사의 양대산맥을 이룬 고승이다.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수학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돌아오는 중에 어느 무덤가에서 노숙을 하던 중 한밤중에 갈증을 못 이겨 마신 물이 아침에 깨어나 보니 해골에 고인 물임을 알고 지은 「心生卽種種法生하고 心滅卽種種法滅이라 心外無法이거늘 胡用別求이리오」(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멸한다.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거늘 어찌 따로 구하리오)라는 오도송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또한 원효대사는 깨달음을 얻은 후 만행(萬行)으로도 전하는 이야기가 많다. 원효대사가 만행 중 어느 마을에 머물다가 떠나면서 그 마을에 정이 들었는지 마을사람들에게 한 샘을 가리키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저 우물가에서 까치가 울면 내가 죽은 줄 알아라. 」하고. 원효대사가 떠나간 후 몇 년이 흘러 사람들은 이 말을 까마득히 잊고 살다가 어느 날 샘 주위에 까치가 모여들어 우는 소리를 듣고는 원효대사가 남긴 말이 생각나 수소문해보니 정말 원효대사가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그 마을이 지금의 경북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 있는 작동(鵲洞: 까치마을)이란 마을이며 그 샘이 지금 작천(鵲泉: 까치샘) 이라 불리는 샘이라고 한다.

 

 

 

 

 

 

 

 

 

 

 

 

 

 

 

 

 

 

 

 

 

 

 

 

 

 

 

 

 

 

 

 

 

 

 

 

 

 

 

 

 

 

 

 

 

 

 

 

 

 

 

 

 

 

 

 

 

갑오년 청마의 새해에는 좋은 꿈 더 많이 꾸시고

일년 내내 좋은 소식만 있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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