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남성 낙양기행(1/2) 용문석굴

2013. 6. 22. 20:18해외여행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기행(1/2) 용문석굴

 

밤잠을 설치고 아침에 일어나 창문으로 밖을 보니 날씨는 우리네 황사 자욱이 낀 날같다.

 가이드에 들어니 중국의 황사 발원지가 바로 이 낙양과 정주라고 한다.

늘 찌푸린 날씨, 그렇다고 강우량이 많은 것도 아닌데 낙양의 날씨는 늘 이렇다고 한다.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가면 저기 저모양 될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

 

한때 모 가수가 불렀던 낙양성, 그 낙양이 바로 하남성의 낙양이다.

 

 

낙양 (洛陽)은 중국 문화의 발생지로서 기원전 16세기에 상(商)왕조가 자리 잡았던 곳이다.

황하의 남쪽 지류인 낙수(洛水: 지금의 이하강)를 앞에 두고

뒤쪽은 작은 야산 북망산(北忙山)이 울타리처럼 둘러 있어 낙수의 북쪽이라 낙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황하와 연결된 낙수로 인해 해상운송의 수단이 일찍이 발전했던 도시이며

정치적으로는 상(商)대 이후 동주(東周), 후주(後漢), 조조의 위(魏), 서진(西晉),

북위(北魏), 수(隋), 당(唐), 후양(後梁), 후당(後唐) 등 5대 왕조가 낙양에 도읍을 정했기에

구조고도(九朝古都)라 불리는 곳이 낙양이다.

당태종은 해가 지는 곳 곧 낙양이라 방문하지 않았지만 924년 동안 역대 왕조의 수도였다고 한다.

 

 

낙양에는 삼절일보(三絶一寶)라는 것이 있다.

3가지 특별한 것과 한가지 보물이라는 뜻인데 측천무후가 처음에는

모란꽃을 싫어하여 없애버리라고 명했지만 모란을 해마다 피어났다.

이를 본 측천무후는 자기 인생여정과 비슷하다 하여 그 후 모란꽃을 즐겨했다.

지금도 매년 4월경에 모란축제를 연다고 한다.

둘째는 용문석굴이며, 셋은 수석요리다.

갖은 음식을 접식으로 내놓은 것인데 국물이 많아서 수석요리라 일컫는다.

한 가지 보물은 당삼채(唐三彩)인데 도자기를 의미한다.

녹색, 갈색 백색(혹은 녹색, 황색, 남색)의 도자기 인데

측천무후가 즐겨 사용했다고 해서 유명하다.

 

용문석굴은 이하강을 바라보고 있다.

 

용문석굴은 두개의 문이 있다. 첫문 현판은 용문이라고 되어 있다.

 

이하강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날씨는 꼭 안개낀 날처럼 흐리다.

맑은 날이었다면 물빛도 고왔을텐데..

 

두번째 문이다. 용문석굴이라고 현판이 걸려있다.

 

 

@용문석굴은 돈황의 막고굴, 대동의 운강석굴과 더불어 중국 3대 석굴 중 하나다.

2000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용문석굴은

용문산과 항산 암면에 서기 404년경 북위 효문제가 대동에서 낙양으로 천도한 후 건축하기 시작하여

동위, 서위, 북제, 서주, 수, 당과 북송 왕조 등 8개 왕조를 거치면서

무려 40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석굴 1352개, 불상 10만여 기 불탑 40개 기 등이 1km에 걸쳐 조성되었다.

자연적인 풍화와 불두(佛頭)를 가지면 복이 온다는 민간신앙, 도굴꾼에 의한 반출,

외세에 의한 파괴, 문화혁명 때 홍위병 등의 훼손으로 불상 등의 얼굴들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실제로 불두와 불상이 사라진 것이 많고 온전한 불상이라도

색이 바래고 마모가 너무 심하여 불상인지 아닌지 조차 판독이 어려울 정도였다. 

 

석가모니불인듯 한데 마모가 심하다.

 

 

 

 

 

 

 

 

 

 

불상은 사라지고 빈 좌대만 댕그란히 남았다. 바닥에 새겨놓은 글은 산스크리트어 같은 불경이다.

 

온전한 불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무상한 세월탓인가.

 

 

 

 

 

 

 

 

 

 

 

 

 

벌집같은 석굴들, 불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대역사다.

시공을 초월하여 옛사람들의 불심이 가슴에 와 닿느다.

 

가운데 불상을 둔 듯한데 불상은 보이지 않고 벽에 새긴 암각화도 마모가 심하여 판독하기 어렵다.

 

 

 

 

 

@용문석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봉선사의 대불이다. 주불은 노사나불이다.

측천무후가 지은 것이라 측천무후의 얼굴을 많이 닯게 만들었다고 한다.

용문석굴의 대불이 있는 이곳을 봉선사라 불린다.

봉선사는 2제자, 2보살, 2천왕, 2역사(力士)로 조성되고 왼쪽으로부터 

악귀/다문천왕/아난/보현보살을, 우측으로는 가섭/문수/다문천왕/ 역사를 세웠다.

역사는 불교권에서는 대게 금강역사를 의미하는데 금강역사는 부처와 불법수호를 담당하는 야차신이며

아촉불의 현신이라고도 한다. 금강역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수문장 역할을 하는 2대 역사로 등장하는데

보통 왼쪽에는 금강저를 들고 있는 밀적금강을,

힘이 코끼리의 100배나 세다고 하는 원광이 그려진 나라연금강이다.

원광은 지혜를 상징한다 여기의 역사도 그런 것이 아닌가 유추해석 해본다. .

 

 

 

                          부처 옆 협시로 서 있는 가섭의 얼굴은 마모된 것인지 파괴되었는지 형체를 분간할 수 없다.

불경에 이르듯 뛰어난 미모를 지닌 아난은 그 형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노사불의 크키는 17.14m에 달하며 얼굴은 4m, 귀의 길이만도 1.9m라고 한다

 

 

 

바닥에 불두만 댕그란히 놓여있다.

 

이 불상은 윗부분은 파괴되고 아랫부분만 마모된 채 남아있다.

 

 

 

 

 

 

 

강 건너 향산사 전망대에서 바라 본 용문석굴

향산사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봉선사가 더욱 오뚝하게 보인다.

 

 

 

言者不知知者默

언자부지지자묵

此語吾聞老君

차어오문어노군

若道老君是知者

약도노군시지자

緣何自著五千文

연하자저오천문

`

~노자/백거이~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고 아는 사람은 입을 다문다

이말을 나는 노자님으로부터 들었는데

만약 노자님께서 아는 분이라 한다면

무엇 때문에 손수 ‘도덕경’ 오천자를 지으셨을까

.......

 

                                  시공(時空)을 초월한 불심(佛心)에 경외감(敬畏感)을 느끼며

                                낙양에서 마지막 코스인 향산사로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