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암 가는 길

2010. 4. 21. 01:48국내 명산과 사찰

낙화암 가는 길 

사비문 

부소산성(扶蘇山城)

백제의 도읍지 사비의 중심을 이룬 산성. 백제는 3번 도읍지를 천도했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첫 번째는 BC18년 고구려 주몽의 아들인 온조가 그의 형 비루와 함께 남하해서 세운 위례성(慰禮城: 지금의 서울)이고,

두 번째는 4세기 말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진정책에 밀리다가

고구려 장수왕 때 당시 수도인 한성(漢城: 지금의 강동구)이 함락 되어

개로왕이 살해되자 뒤를 이은 문주왕이 웅진(熊津:지금의 공주)으로 천도했다.

3차 천도는 성왕 16년(538)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면서 웅진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 했는데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산성(山城)으로 백제시대에는 사비성으로 불리었다.

이 산성은 서기 538년에 이미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도성을 방어하는 핵심산성으로  

해발 106m, 면적은 960,828평방미터(290,650평)에 달한다.

북쪽에는 백마강이 감싸 흐르고, 부소산성은 군창지와

사자루의 산봉우리를 머리띠를 두르듯 쌓은 테뫼식과

골짜기 능선을 감싸며 쌓은 2495m의 포곡식 산성으로 혼합된 독특한 복합식 산성이다.

산성 내에는 군량미를 보관했던 군창터(군창지)와 동서남북 방향에 4개의 문터(門址),

백제의 왕과 귀족이 해를 맞으며 국정을 계획했던 영일루(迎日樓),

백마강에 잠기는 달을 보며 국정을 정리했던 옛송월대(送月臺)에 세운 사자루,

백제시대의 군인들의 움막인 수혈병영지(竪穴兵營址),

망루로 추정되는 반월루(半月樓), 백제 패망 시 수많은 궁녀가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낙화암,

그리고 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고려 때 세운 고란사(皐蘭寺)가 있고

고란사 약수와 고란초가 유명하다.

성의 남쪽에는 백체 삼충신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삼충사 등이 있다.

 

 

                                    부소산문

 의열문

 삼충사(三忠祀)

백제의 충신 성충(成忠?~656), 흥수(興首:?) 계백(階白?~660)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57년 세운 사당. 성충은 백자 의자왕 때 좌평으로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애쓰다가 투옥되어 식음을 전폐하고 죽은 충신,

흥수는 나당연합군이 공격해 오자 탄현(炭峴)을 지키라고

의자왕에게 간곡하게 당부하였던 것으로 유명함.

계백은 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군이 황산벌로 처들어오자

5천 결사대로 싸우다 황산벌에서 장렬히 죽은 장군임.


 성충영정

                                       흥수영정

                                  계백장군영정 


                                                 영일루(迎日樓)

부소산 동쪽 산봉우리에 원래 영일대가 있어서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던 곳이나

 1964년 5월 홍산에 있던 조선시대 관아문을 옮겨 세우면서 영일루라 했다. 


                                            군창지(軍倉址)

부소산성 동남쪽에 있는 창고터로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나

유사시 피난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폐허로 남은 흔적뿐이다.

 

                                                  반월루 

                                      백화정(百花亭)

백화정은 부소산성 북쪽 백마강의 험준한 바위 위에 떨어져 죽은

삼천 궁녀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9년 평면을 6각형으로 지은 정자다.

 

                                          낙화암(落花巖)


~현림~

 

무심한 백마강은 유유히

산 밖으로 흘러가고

 

고란사 뜰악에 분홍 벚꽃만

묵은 옛가지에서 피는구나

 

꽃잎처럼 사라져간 삼천궁녀

그 아픈 사연 어디에 새겼을까

 

낙화암에 얼룩진 바래진 핏빛

千年松은 말없이 백마강을 굽어보네.


 

 

                                      

       낙화암(落花岩)

사자수 내린 물에 석양이 빗길 제

버들꽃 날리는 데 낙화암이란다.

모르는 아이들은 피리만 불건만

맘있는 나그네의 창자를 끊노라

낙화암 낙화암 왜 말이 없는냐.

 

@사자수는 백마강, 사비강, 백강, 백촌강으로 불림

 

 

낙화암 천년송

 

남부여국 사비성에 뿌리내렸네

칠백년 백제역사 오롯이 숨 쉬는 곳

낙화암 절벽위에 떨어져 움튼 생명

비바람 눈서리 다 머금고

백마강 너와 함께 천년을 보냈구나.

세월도 잊은 그 빛깔 늘 푸르름은

님향한 일편단심 궁녀들의 혼이련 가

백화정 찾은 길손 천년송 그 마음

 

사자루(泗 氵此 樓)

부소산성 제일 높은 루로 원래는 달구경을 했던 송월대가 있었든 곳.

백제 때에는 이곳에 망루가 있었던 곳을 추정 된다. 


고란사(皐蘭寺)

창건연대는 미상. 백제 17대 아신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고

3000궁녀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고려 때 지었다는 설도 있다.

법당 건물은 조선 정조 21년(1797) 은산의 숭각사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삼성각 

낙화암에서 내려다 본 백마강 

 부소산성의 뜰악


 

 

낙화암/홍춘경

 

國破山河異昔時(국파산하이석시)

獨留江月畿盈虧(독류강월기영휴)

落花巖畔花猶在(낙화암반화유재)

風雨當年不盡吹(풍우당년부진취)

 

나라는 깨어지고 산하는 옛날과 다르니

홀로 강에 머문 달은 그 몇 번을 차고 이지러졌음이오

낙화암 언덕에 꽃은 아직 피었으니

비바람 치던 당년에 모두 날리지 않았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