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2)

2007. 6. 23. 00:42넋두리

<남해바다에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2)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있다.

외로워서가 아니고, 무료해서도 아닌

이렇게 부슬 부슬 비가 내리는 날 특히.

꼭이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도,

꼭이 가야할 곳도 있어서가 아닌데,

하루 종일 하얀 벽 앞에 앉아 있는 사람처럼

말이 안으로만 기어들어 가는 날에.


누가 그랬던가. 군중 속에 고독을 느낀다고.

하루에도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산다는 것이 피곤하여 싸구려 화장품 냄새를 풍길 때

속물(俗物) 냄새가 코끝을 간지를 때.

그런 날은 비 오는 날만큼 우울해진다.

그런 날일수록 그냥 훌쩍 어디엔가 떠나고 싶어진다.

짐짝처럼 실려 가는 시간이란 열차 속에서 내려보고 싶어진다.


먼 이국땅, 무인도가 아니더라도,

잠시 내렸다 가는 역이라도 좋다.

간이역 같은.


우산이 없어도, 우비가 없어도 좋다.

아스팔트길이 아니라도 좋다.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 때문에

흙탕물 퉁기지 않는 길이라면.

그저 옷깃을 세우고 홀로 걷을 수 있는 길이면 좋다.


낯선 사람 한두 명 만난들 어떠랴.

마중 나온 사람도 아닌,

일 보러 간 것도 아닌데.


부슬 부슬 비가 내리는 날엔

그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속물냄새가 풍기지 않는 곳으로.

잠시라도, 시간 속을 달려가는

삶이란 열차에서 잠시라도

그저 내렸다 갈 수 있는 그런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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