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 28) 가마우지와 자유로운 삶
2025. 3. 3. 17:17ㆍ포토습작
중국의 계림(桂林)은 산수갑천하(山水甲天下)로 불리는
산수화의 대명사로 통하는 중국의 유명 관광지 중에 하나로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널리 알려져 많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계림의 관광명소로 가장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양강사호(兩江四湖)라 할 수 있다.
양강사호는 2개의 강과 4개의 호수를 일컫는 말이다.
2개의 강은 이강(濔江)과 도화강(桃花江)을 의미하는데
이강은 남령산맥(南嶺山脈)의 최고봉 묘아산(猫兒山)에서 시작하여
계림의 시가지를 흘러 주강(珠江)에 합류하는 강이다.
전장은 426km이라고 한다.
이강은 계림에서 양삭까지 83km가 최고 절경으로 꼽히며
도화강(桃花江)은 이강과 합류하는 데
그곳에 코끼리 코를 닮았다는 상비산이 솟아 있다.
계림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분리되는
장족(壯族), 한족(漢族), 묘족(苗族), 요족(瑤族), 동족(侗族) 등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각기 독특한 생활을 하면서
서로 어우러져 지내고 있는 곳인데
이강(濔江)에 거주하던 소수민족 중 광시족은
생계를 위한 독특한 생활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강에 사는 사람들의 주 생계는 어업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물이나 낚싯대를 이용하지 않고
<가마우지>라는 새를 이용하여
고기잡이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가마우지는 본능적으로 헤엄도 잘 치지만
잠수 능력도 뛰어나 물고기를 잡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를 이용해 어부가 넓은 강이나 호수에 나가
집에서 사육한 가마우지를 풀어 놓으면
가마우지는 물속으로 잠수하여
물갈퀴가 달린 발로 힘차게 헤엄을 쳐
능수능란하게 물고기를 잡는다.
가마우지는 잡은 물고기를 물 위에서 먹을 수 없어
배 위로 가지고 올라와서 먹게 되는데
이때 어부들은 그 가마우지가 잡은 물고기를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옛적에는 이런 방식으로 고기를 잡는 것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
지금은 계림이 자랑하는 하나의 관광상품이 되어 있다.
가마우지는 야생의 조류다. 대부분 해안에서 생활하나
큰 강이나 호수에서도 볼 수 있는데
크기가 큰 종류는 몸길이가 70cm 이상이다.
가마우지 중에서 가장 크고 흔한 종은 민물가마우지로,
뺨이 흰색이고 몸길이는 약 90cm이다.
둥지는 나뭇가지와 해조류를 이용하여
절벽의 바위 턱에 만든다.
우리나라에 발견된 가마우지는
과거에는 제주도 등에서만 보이던 보기 드문 새였지만
현재는 본래 철새였던 민물가마우지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텃새화되어 대한민국 전국에 분포하고 있다고
조류학자들은 말하는데 조류에 대해 문외한인 필자가
중랑천에서 나들이 하던 중 우연히 못 보던 두 마리 새를 발견하여
호기심으로 검색해 보았더니 가마우지였다.
주인은 가마우지의 먹이를 책임지고
가마우지는 물고기를 잡아 주인에게 보답하는 것으로 보면
사람과 새가 서로 상부상조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러한 방식이 정녕 바른길일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물질적인 행복보다는 정신적인 행복이다.
아무리 날마다 진수성찬을 차려준들,
값진 옷과 호화롭고 황금으로 장식된 주택을 베풀어 준들
거동에 제약을 받으면 행복하다고 느낄수 있을까?
행복한 삶이란 자유를 느낄 때이다.
자유로운 삶이란 매이지 않는 삶이다.
어떤 끈에도 묶이지 않고,
어떤 울타리 안에 갇혀 있지 않은 삶이다.
새장에 갇힌 새는 새장 안에서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만
그것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누리는 행복일 뿐이다.
허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그 자유로움과 비교가 될까?
그렇다고 그 새장을 황금으로 만들어 주면,
새가 자유롭다고 여길까?
옛적에 못된 사람을 비유할 때 개를 들어 비유했다.
사람과 개가 경주한다고 가정해
개가 사람보다 앞서거나 뒤처지면
개만도 못하다고 비난하고
개와 같이 들어오면 개같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그 소리도 이제는 옛말
지금은 VIP로 격상되어서 반려견이라 부른다.
전문식탁에 전문병원까지 사람보다
그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그 반려견에 재갈을 씌우고 목줄을 달면
아무리 좋은 대접을 한다고 해서
개가 그것으로 행복하다고 느낄까?
설령 그 재갈이나 끈을 황금으로 만들어 준들
그 개가 행복하다고 느낄까?
끈에 묶인 개가 누리는 행복이란
그 끈의 길이에 비례할 뿐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집이라도
울타리가 높으면 그 안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지만
내가 밖을 나갈 수도 없고 밖을 못 불 수도 없다.
남도 마찬가지다.
마치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자유로움이란 새장 안에서 느끼는 자유로울 뿐이다.
마음이 자아의식에 갇히면 수갑을 찬 것과 같은 것이다.
쇠로 된 쇠고랑을 채우면 불행하고
황금으로 만든 쇠고랑을 채우면 행복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까?
세속의 삶이란 강물 위에 비친 달그림자처럼 허상을 좇는 것과 같다.
불교에서 공(空)을 말하고 무아(無我)를 말하는 것은
이러한 매임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무애(無碍)한 삶, 자유로움은 무아(無我)에서 오기 때문이다.
<나>라는 끈을 벗어 버리고,
<나>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날 때
본래 나의 참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된 행복이란
무엇에도 매이지 않을 때 느끼는
자유로움이요, 환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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