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총림 승보사찰 순천 송광사<제2부>

2017. 7. 14. 23:38국내 명산과 사찰

대한불교 조계총림 승보사찰 순천 송광사<2>

 

순천 송광사는 조계종 산하 승보사찰이다.

스님()들을 양성하고 교육하는 전문 수행도량처이며 불교교단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승()은 비구니까지를 포함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비구만을 말하는 것이다.

송광사는 비구니를 양성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구니들을 위한 전문 수행도량처로 잘 알려진 곳은 청도 운문사와 계룡산 동학사를 꼽는다.

불교 교단을 설립하고 비구를 위한 최초의 장소는 녹야원(鹿野園)이다.

초전법륜지로 알려진 녹야원은 인도지명으로는 사르나트(Sarnath, Sarnātha)로 불리며

바라나시의 북방 약 10km에 위치해 있다.

붓다가 부다가야(Buddha Gaya)의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를 한 후

처음 고행에 나섰다가 돌아 선 다섯 도반들인 콘단나, 밧디야, 밥파, 마하나마 그리고 앗사지가 머물고 있다는,

부다가야에서 250km나 떨어진 녹야원을 찾아 그들에게 처음으로 사성제를 설함으로

비로소 승단이 성립되고 이 5제자가 최초로 비구가 된 것이다.

오늘날로 보면 녹야원이 최초 승단의 탄생지이며 비구들을 양성하는 전문수행도량처인 셈이다

 

 

수행도량이다. 복숭아 형상을 한 입구 문이 눈을 끈다.

 

@승보전

승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집으로, 중창 이전에 대웅전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1961년에 이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다.

1961년 중창되어 내력이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옛 대웅전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므로 법당의 격식을 잘 갖추고 있다.

그래서 승보사찰인 송광사에서 승보전이 차지하는 상징적 그 의미가 크다.

승보전 안에는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설법하던 모습을 재현,

부처님과 10대 제자, 16 나한, 1250명의 스님을 모셔놓았다.

(사진촬영금지 표시판이 있어 밖에서 촬영했다 )

 

 

 

 

 

 

 

 

 

 

 

 

 

 

 

 

 

 

 

 

@송광사 관음전은 1846년 중창되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사중기록에 의하면 광무 7(1903)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관음전은 본래 성수전 (聖壽殿)이라 하여 1903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 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 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세음 보살 좌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고

내부 벽화에 문신들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 있다.

또한 내외벽에는 화조도, 산수화 등이 그려져

일반 사찰의 벽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송광사 관음전의 특징이다.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은 2010.08015일 보물제1660호 지정되었다.)

 

 

관음전의 닫집은 일반사찰의 전각에서 보는 닫집과 많이 다르다.

 

 

 

 

 

 

 

 

 

 

 

 

보조국사 감로탑

@송광사 설법전의 오른쪽, 지금의 관음전 뒤뜰 언덕에 있는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의 감로탑이다.

고려 말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고, 4각 기단 등은 대체로 딱딱한 감을 주고 있다.

그 옆에는 佛日普照國師甘露之塔(불일보조국사감로지탑)’이라고 쓴 오세창(吳世昌)의 글씨가 있는 비가 있다.

보조국사는 고려시대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1세로 정혜결사를 일으킨 주인공이다.

당시 고려 후기의 불교계에 새로운 정신개혁 운동을 전개한 선봉자로서

한 시대의 부패한 현실을 정의롭게 이끌고자 했던 종교지도자였다.

이 감로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1기의 사리탑으로,

2002927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지눌(知訥: 1158~1210)은 고려의 승려로 속성이 정()이고, 자호가 목우자(牧牛子)이며,

시호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이며, 동주(洞州: 서흥) 출생이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도의(道義:. 821)국사를 조계종의 종조(宗祖)로 여기며,

보조국사 지눌을 조계종의 중천조(中闡祖: 분명하게 밝힌 조사)로 여기며,

태고국사 보우(普愚: 1301~1382)를 중흥조(中興祖: 중흥시킨 조사)로 여긴다.

 

역사적 변천을 보면 이 감로탑은 보조국사가 1210(희종 6)에 입적하자

왕으로부터 불일보조(佛日普照)’라는 시호와 감로(甘露)’라는 탑호를 받았으며,

3년 뒤인 1213(강종 2)에 탑이 세워졌다.

 

감로탑의 총높이는 272이며, 기단부 120×124, 탑신부 48×59, 옥개석 55×99, 상륜부 49이다.

맨 아래에 2단의 정사각형 대좌를 놓고 그 위로 네 귀퉁이에 각을 이룬 또 다른 대좌를 끼워 넣었는데,

이는 매우 특이한 형식이다. 맨 아래 2단의 정사각형 대좌는

그 위에 있는 돌들과 석질이 다른 점으로 보아 1926년 이 탑을 해체복원하면서 새로 끼워 넣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 위에는 희미하게 연꽃무늬를 새긴 복련석이 몸돌을 받치고 있으며,

그 위에 8각의 지붕돌과 머리장식이 올려져 있다.

그 동안 송광사 경내에서 몇 차례 자리(普照洞上, 高峯原上, 碑殿嶝上 )가 옮겨졌으나

지금은 원래의 위치에 있다. 1926년 해체 복원되면서 입구의 30개 돌계단을 축조하였고,

1927년에 감로탑개수비를 세웠다.

 

 

 

 

보조국사 감로탑은 맨 아래 바닥돌을 제외하고 거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데,

특히 지붕돌의 급격한 전각과 처마의 귀솟음, 둥근 공모양을 하고 있는 몸돌의 모습은

고려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 사리탑으로

보조국사 지눌의 역사적 위상과 함께 건립 시기와 주인공을 알 수 있어 가치가 있다.

 

 

 

 

 

 

감로탑에서 내려다 본 대웅전

 

 

 

 

 

일주문을 나서면서 임경당을 다시 담아 본다.

 

 

 

 

척주각(滌珠閣세월각(洗月閣우화각(羽化閣) 

일주문 뒤쪽에 41칸씩의 몹시 작은 건물이 두 채 있는데, 현판에 척주각·세월각이라 하였다.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건물이다. 죽은 이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재식시(齋式時) 영가(靈駕)의 관욕처(灌浴處)가 된다고 한다.

, 망령도 남녀를 갈라서 척주각은 남자 영가를 위한 관욕소이고,

세월각은 여자 영가의 관욕소가 된다.

영가가 절에 들어오기 전에 이 관욕소에서 목욕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관욕소 왼쪽에는 보조국사가 스스로의 불멸을 입증하기 위하여 심었다는 고향수(枯香樹)가 있다.

높이 15m의 이 고목나무는 보조국사가 다시 송광사를 예방할 때 소생한다는 전설이 얽혀 있다.

고향수를 지나면 계곡을 지나는 곳에 능허교(凌虛橋)가 있고,

이 위에 우화각이라는 일종의 문루가 4칸 길이로 서 있다.

이곳에는 예로부터 송광사를 거쳐간 시인·묵객들이 지은 한시가 걸려 있다.

건립연대는 17001711년 사이이며, 1774(영조 50)에 중수하였다.

 

 

 

 

 

 

 

 

 

 

 

 

 

 

 

 

 

 

극락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