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침향무(沈香舞) / 황병기

2006. 8. 27. 10:18명상가요음악


        
        침향무(沈香舞) / 황병기님 가야금 연주
        주옥같은 창작 가야금 곡을 발표해서 음악애호가들의 
        귀를 국악으로 돌려놓은 황병기, 
        그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며 가야금연주자로 손꼽힌다. 
        1963년 가야금독주곡 <숲>을 작곡하여 
        창작 가야금 곡의 새 장을 연 이후 새로운 조현법과 
        주법을 사용한 <침향무>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황병기의 학력은 가야금과는 전혀 무관하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온 
        그의 학력 어디에서도 가야금과의 연관성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중학교 때부터 국립국악원에서 김영운, 김윤덕, 
        심상건과 같은 당대의 가야금 명인들로부터 가야금을 배웠고 
        전국 국악콩쿠르에서 2회나 최우수상을 탄 경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의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6.25 동란의 어려운 시기에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와 
        가야금을 배운 인연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도 
        전공과는 거리가 먼 음악대학 국악과 강사가 되므로써 
        가야금과 함께하는 그의 여정은 화려하게 꽃피게 된다.
          한국인 최초로 해외에서 레코드를 출반하여 
        미국의 오디오지 '하이파이 스테레오'로부터 
        "현대인의 정신을 해독시키는 음악"이라는 
        평을 받은 그의 경력은 다채롭다. 
        1965년 6개월간의 미국 순회연주, 74년 3개월간의 유럽 순회연주, 
        그리고 86년 미국 카네기홀 독주회 등 수많은 연주회와 
        한국과 미국에서의 레코드 취입을 통해 가야금의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알렸고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65년에 국악상, 
        75년에 한국영화음악상, 92년에 중앙문화대상을 수상하였다. 
          새로운 음의 세계를 추구하면서도 우리다움을 잃지않은 
        그의 음세계에 관해 그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서양음악이 벽돌이라면 동양음악은 소리 하나 하나를 
        정원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서양곡은 벽돌을 쌓아가듯이 작곡하지만, 
        동양곡은 정원에 돌을 배열하는 기분으로 만들지요. 
        돌 하나 하나의 모습, 즉 소리 하나 하나가 어떻게 
        오묘하게 변하는가에 귀가 열려야 
        우리음악의 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소리 하나 하나의 오묘한 변화는 
        전통음악의 농현과 퇴성 그리고 전성과 추성 등의 주법에서 
        얻어지는 미묘한 음의 변화와 그로 인한 곡선의 
        부드러움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음의 세계를 추구한 <침향무>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는 조선조 후기음악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침향무>를 작곡하였는데 '신라 무용인들에게 
        작곡을 위촉받았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74년에 작곡된 <침향무>는 새로운 조현법과 주법에 의한 
        이국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 때문에 발표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조의 가야금산조와는 다른 새로운 음계를 선보인 
        <침향무>는 1장에서는 전통적인 장단과 선율로 동양화와 같은 
        깊이 있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펼쳐지고 
        2장에서는 분산화음으로 서역의 이국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킨 후 오른손의 스타카토를 반주로 
        왼손에 의한 서정적인 가락이 노래하듯이 흐른다. 
        3장에서는 이 곡의 제목에 나타나듯 침향이 서린 속에서 
        춤을 추는 듯한 분위기의 휘모리 가락이 
        왼손의 화음을 타고 환상적으로 전개된다. 
        정열적으로 진행되던 선율이 갑자기 멈춘 다음 
        이어지는 트레몰로는 이전까지는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연주법으로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테로 점차 커지며 
        긴장감을 주다가 다시 피아니시모로 약해진다. 
        약해진 소리의 여음이 사라질 즈음에 이어지는 영롱한 분산화음은 
        이전까지의 혼돈을 일시에 잠재우는 천사의 날개짓을 연상시킨다. 
        혼돈과 해결을 극명하게 대비시킨 3장의 이 부분이야말로 
        침향무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침향무가 실린 음반은 79년도에 성음에서 발매된 뒤 
        스테디셀러로 자리하며 국악애호가를 늘리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황병기를 감성의 작곡가라고 부른다. 
        정원석같은 소리를 오묘하게 엮어나가는 그의 작품을 
        듣고 있노라면 논리적인 구조에 앞서 아름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영롱한 음색으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면서 펼쳐나가는 
        그의 이야기는 현대인의 지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며 달래준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통음악의 보존과 함께 국악이 발전하려면 
        좋은 창작곡들이 많이 나와야한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해줄 주옥같은 가야금곡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소설가 한말숙씨 '가상유언' 눈길 
        "수의는 엄마가 준비해 둔 것을 입혀라.
        화장해서 재를 엄마가 아끼는 정원의 주목 밑에 뿌려라.
        너희 아빠의 재혼은 안된다" (소설가 한말숙씨) 
        문단 원로인 한말숙(72)씨가 격월간 '한국문인'에 
        매우 눈길이 가는 '가상 유언장'을 실었다. 
        슬하 네명의 자식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한씨는 8개항에 걸쳐 구체적 '당부성' 유언을 남겼다. 
        "수의는 엄마가 준비해 둔 것을 입혀라"라고 운을 뗀 한씨는
         "장례식은 병원 영안실, 가족장은 검소하게, 아빠의 음악을 
        아주 작게 들리게해라. 찬송가, 독경 다 필요 없고 
        영정 앞에는 헌화한 꽃만 놓아라"고 요청했다. 
        한씨의 남편은 가야금 작곡가 황병기씨로, 
        금실 좋기로 소문나 있다. 
        또 한씨는 "아빠도 너희들도 검정 양복에 하얀 종이꽃 리본만 
        가슴에 달아라"면서 "엄마의 친구 선후배들이 오실지 모르나 
        부의금은 절대 사절해라. 
        내빈의 싸인장만 준비해 두어라. 
        장례식이 끝난 후 그 분들께 감사장을 보내라"며 
        장례가 자칫 '민폐'가 되지않도록 배려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화장해서 재를 엄마가 아끼는 정원의 주목 밑에 뿌려라. 
        이것이 불법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소로 올라가서 
        중허리 쯤에 뿌려라. 그 역시 불법이면 돌 상자에 분골을 담아서 
        묻고, 묘비는 내가 그려서 보여준 대로 얕으막하게 
        네모 모양으로 단단한 돌로 만들어라. 
        비싼 대리석 같은 것은 쓰지 마라"고 했다. 
        묘비명은 "평생 감사하며 살다가, 
        한점 미련없이 생을 마치다.."로 새겨줄 것을 주문했다. 
        한씨는 기일에 재래식 제사를 지내지 말고, 
        대신 편한 곳에서 자신의 사진을 내놓고 회상하거나 
        함께 모여 식사를 할 것, 성묘는 1년에 한차례 하고 
        차례는 지내지 말 것, 성묘 때 음식은 가져가지 말 것 
        등도 조목조목 부탁했다. 
        그리고 "너희 아빠의 재혼은 안된다. 
        아빠는 손이 안가는 분이시니까 너희들 중 여건이 맞는 애가 
        아빠 가까이에서 살면 된다. 
        나의 유산과 유품은 평소 말했던 대로 해라"고 말을 맺었다. 
        한씨는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해 195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현대문학상,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어떤죽음' '노파와 고양이' '장마' 등이 대표작으로, 
        전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중 한명이다. 
        
출처 : 국사모(국악을 사랑하는 모임)
글쓴이 : 금난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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