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7. 26. 01:53ㆍ카테고리 없음
삶의 황금룰(rule)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산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업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삶은 우리에게 갖가지 규제를 펴서
우리를 대단히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삶을 이해할 때 삶은 간단해 집니다.
삶에는 어떤 규칙이나 규제가 없습니다.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고 있는 것 그 자체가 곧 규칙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의 황금 룰이 있다면 그것은 곧 "이해"일 것입니다.
다른 모든 규칙은 쓸모가 없습니다.
다 던져 버려야 모든 규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하는 행동은 무엇이나 다 이해를 통해서
행해지기 때문입니다.
이해는
영어로 <UMDERSTANDING>
<~의 아래에 서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사물의 아래에 서면 지족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절약하고 아끼는 마음이 생기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사람의 아래에 서면 교만과 에고가 사라지게 됩니다.
교만과 에고가 사라지면 사랑은 절로 생기게 됩니다.
사랑이 있는 곳은 갈등과 투쟁이 아니라
조화와 질서와 겸손이 따르게 됩니다.
<~의 아래에 서는 것>을 일러 하심(下心)이라고 합니다.
살아가는데 황금룰이 있다면 이 하심이 됩니다.
사람이 모두 이 하심이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맑고 밝고 향기로운 삶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심을 일러 삶의 황금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시비선악이 교차합니다.
그래서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무엇이 옳은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질문을 많지만 답은 간단합니다.
이해를 통해서 행해진 것, 오직 이것만이 옳습니다.
옳고 그름에는 어떤 객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옳은 행위라든가 잘못된 행위라든가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없는 것입니다.
단지 <이해를 통해서 행해진 행동>과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행해진 행위>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순간에는 옳은 것이
다음 순간에는 잘못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바뀜에 따라서 이해도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해한다 함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삶에 감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회자하는 <수연(隨緣)>이라는 말도
이런 뜻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보면 인연을 따른다는 말입니다.
인연을 따른다는 말은 어떤 교리나 이즘에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이해 속에 살아 갈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고정된 교리는
필요치 않다는 의미가 됩니다.
주위를 돌아보고 느끼고 앎으로써
그대로 감응하면서 행동할 때
올바른 행동이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