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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의 저녁 식사와 희론(戱論)

나그네 현림 2025. 4. 13. 11:34

하늘도 잿빛이고

강변 나들이 하기에도 조금 늦었지만 집을 나섰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새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충 걷다가 포기하고 돌아오는데 숲 가에서

먹이 사냥을 하는 왜가리 한 마리를 만났다.

강변 산책이야 늘 다니지만, 오늘의 이 조우(遭遇)는

우연(偶然)이 아니라 완전 기연(奇緣)이다.

아둔한 아마추어로서

새들이 비상(飛翔)하는 모습을 찍기도 어렵지만 이 보다

먹이 사냥을 하는 새들을 만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보통 인연이 아니다.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이

그 어려운 왜가리의 저녁 식사 모습을 엿볼 수 있었으니.

 

 

 

 

 

 

 

 

 



 

 

 

 

물가에서 한참 응시하더니 잽싸게 먹이를 낚아챈다.

그리고 긴 부리로 한참 요리를 하더니 날름 삼킨다.

오후불식(午後不食)인데 간식하느냐고?

그건 니네들 공부한다는 선방(禪房) 친구들이 하는 소리지.

12시간 정도는 위(胃)를 비워두어야 뇌(腦)가 좋아진다고?

그딴 헛소리 내게는 하지 말게. 굶는 날이 허다한데.

 

 

 

 

 

 

 

왜가리는 날고 물속에는 잉어들이 물장구 치고 놀고 있다.

왜가리는 분수를 아는지 잉어를 탐내지 않는다. 

잉어가 좀 큰놈이라서 삼키기가 좀 그런가 보다.

 

 

 

 

 

 

 

 

 

 

한참 늦은 시간에 무슨 먹이 사냥하느냐고?

하긴 인간들은 백장회해(百丈懷海:749~814) 선사의

백장청규(百丈淸規)인가 뭔가를 들먹이면서

“하루 동안 일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식사하지 않는다”라고 떠든다지.

니네 인간들 사회의 무직자나 실업자들 한번 생각해 봐.

그들은 다 굶어 죽으라는 이야기야.

그 사람 당(唐)나라 사람이라는데 어느 당(黨)인가?

보수당이야 진보당이야?

 

 

 

 

 

 

 

니네들 나 보고 강변에서 놀기만 한다고?

뭐 “무노동(無勞動) 무임금(無賃金)” 말하고 싶은 거야?

이것 니네들 힘깨나 하고, 시위소찬(尸位素餐) 하는

배부르고 한가한 사람들에게나 하는 말이지.

생각해 봐.

사람들이야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되지만

하루 종일 눈 부릅뜨고 강물을 뒤져도

미꾸라지 한 마리 잡기도 힘든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는 거야.

 

 

 

 

 

 

풍류를 즐긴다고 산수(山水)가 어떻고 저쩌고 니네들 떠들지만

여기가 내 일터야. 아니 내가 먹고 사는 터전이 이곳이야.

 

 

 

 

 

 

니네들처럼 이 나라 저 나라 해외여행 가고

배고프지 않아도 밤 먹을 수 있고

어깨 힘주고 뷔페나 레스토랑 들락날락할 수 있지만

우리가 어디를 갈 수 있겠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하지 말게나.

 

 

 

 

 

 

 

니네들

백로가 어쩌고, 까마귀가 어쩌고 떠들지만

난 그런 것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네.

그저 생긴 대로 살아갈 뿐이지.

나보다 머리 좋으니 한번 생각해 봐.

본래 너나 나나 빈 몸으로 왔다가

빈 몸으로 가는 것 무애 다를 것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