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봉평 태기산에서
나그네 현림
2023. 7. 6. 20:02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해맑은 소녀의 미소같이
은가루 곱게 뿌려놓은 듯한 봉평 메밀밭
하늘에 흰 구름
한가로이 떠다니는데
무엇이 못마땅한지
장승은 분노한 얼굴로
먼 하늘만 쳐다본다.
인적도 드문 태기산 깊은 골에
얽히고설킨 등나무들
무심한 시간 속에
얼마나 힘겨워
온몸을 저래 뒤틀며 절규했을까?
흐르는 세월 속에
속은 곪아서 멍들고 찢기어
생채기투성이지만
그 긴 시간 동안
함께 보듬어주며 살아 온
해묵은 가지에 돋은 푸른 잎들
한세상 내 그렇게
살았노라고
하늘 향해 외쳐보지만
흰 구름은 말없이 흘러만 가고,
아랫녁 들판의 메밀꽃
소리 없이 웃음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