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명산과 사찰
명성황후의 출생과 관련된 사찰, 여주 대포산 대법사
나그네 현림
2021. 8. 30. 20:01
여주시 가남읍 안금리 대포산(大包山) 기슭에 자리한 대법사(大法寺)는
근대 조선의 여걸로 추앙되는 조선 제26대 고종의 비인
비운의 황후 명성황후 민 씨의 출생과 관련된 사찰이다.
사찰 안내서에 의하면 대법사는 1971년에 창건된 신생사찰이지만,
원래 이곳은 통일신라 때부터 절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통일신라 시대 진성여왕 때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 높이 0.9m의 미륵입상을 조성하여 ‘미륵당’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미륵당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언제 폐사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데
조선 19대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의 아버지이자
숙종의 장인인 민유중(閔維重: 1630~1687))의 묘막(墓幕)을 관리하던
명성황후 민 씨의 부친인 민치록(閔致祿:1799~1858)이
어느 날 밤에 미륵불을 현몽하고 땅을 파서 미륵불을 발견하고
법당을 새로 지어 불상을 봉안했는데 부인 한산이씨가
정성으로 불공을 드려 낳은 자식이 바로 명성황후라고 한다.
민치록은 숙종의 장인인 부원군 민유중의 둘째 아들인
민진후(閔鎭厚:1799~1858)의 7대 후손이다.
그 후 명성황후가 후일 고종의 비로 책봉되자
절을 원당사(願堂寺)로 개칭하였으며,
민씨 일가의 비호를 받았지만 민 씨의 몰락과 더불어
절은 폐사되었던 것을
1971년에 현 주지인 대원 스님이 재건한 것이 지금의 대원사라고 한다.
또 다른 창건에 대한 이야기로는 구전(口傳)이 있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원래 이곳은 절이 아니라
안금리 마을을 수호하는 미륵이 서 있던 곳으로
명성황후의 어머니 이 씨는 여러 자식이 모두 요절하자,
집에서 10여 리 떨어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리며 아들 낳기를 발원했다.
하지만 딸을 낳고 말았는데 그 막내딸이 명성황후이다.
1866년 민 씨가 왕비로 간택되자 어머니 이 씨는
"미륵당에서 100일 기도를 올려 부처님께서 너를 내려 주셨으니
그곳에 절을 지으라"라고 청했다고 한다.
명성황후는 어머니의 청으로
옛 미륵당을 절로 조성하고 원당사(願堂寺)라 칭했다.
이후 기록이 없어 알 수 없고 절은 폐사되었다고 한다.
그 폐사된 절터에 현 주지인 비구니 대원 스님이 원당사를 중건하면서
현재의 이름인 대법사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출처: 불교신문에서>
어느 설에 의하던 대법사(大法寺)는
명성황후 민 씨의 출생과 연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대법사는 1971년부터 대웅전과 요사채,
1988년에 지장전과 종각을 세웠으며 1989년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경내에 구조물로는 일주문, 국사당, 범종각, 대웅전,
지장전, 삼성각 등이 있고 새로 조성한 석조미륵대불상과 7층 석탑이 있다.

@일주문:
<대포산 대법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이 일주문과 법종각이 일직선으로 조성되어 있다.
일주문과 범종각 중간에 작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범종각은 주포식으로 한쪽은 맞배지붕을,
다른 한쪽은 팔작지붕을 한 <T> 형태의 독특한 양식을 취하고 있다.





@대웅전 앞에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최근에 조성된 석탑으로 기단부, 탑신,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방형의 지대석 위에 2층 기단을 하고 그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렸다.
상대면석 모서리에 우주와 중앙에 2개의 탱주를 묘각 했다.
탑신에는 별도 조각을 하지 않았다.
두 개의 탱주를 조성한 이러한 양식은 신라 석탑의 정형적인데
이 석탑은 이를 모방하여 조성한 것 같다.



@대웅전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로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수미단에는 아미타,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었다.


아미타불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므로 석가모니불로 보는 이도 있지만,
아미타불이 항마촉지인을 한 예는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미타불(국보 제45호),
군의 (아미타) 삼존석굴(국보 제109호),
서산 상왕산 문수사 극락보전의 아미타불 등 많은 예가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협시불이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므로
당연히 본존불은 아미타불로 보아야 한다.

신라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했는데도 아미타불인 경우가 있기 때문인데
근래에 지어진 사찰일수록 이런 경향이 많아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아미타삼존불 옆에 조성된 석조여래좌상이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민민한 나발에 육계를 부조하였고, 이마에는 백호가 있고
눈두덩이는 높게, 목에는 삼도가 부조되어 있다.
법의 통견으로 가슴에 군의가 부조되어 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좌대의 상대는 앙련, 하대는 복련을 부조하였다.





@이 석조미륵은
원래 대웅전에 봉안되었다고 한다.
원당사의 발자취를 상징하는 의미로 이 미륵불을 봉안한 모양이다.
이 석불은 한때 사찰에서 석고를 발라 좌불을 만들고
금칠을 해 모시기도 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석고는 떨어져 나가고
원래의 모습인 지금의 돌부처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마모가 너무 심하여 이목구비와 수인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국사당
국사당은 대개 수호 산신이나 고승의 영정을 모시는 데
대법사의 국사당은 산신과 말을 탄 선비를 모신 것이 특이하다.
대조사가 명성황후와 더불어 민씨들과 연관이 깊으므로
황후의 부친인 민치록을 모신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