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보살의 기도도량 선운사 도솔암(1/2)
지장보살의 기도도량 선운사 도솔암(1/2)
고창 도솔암은 선운산 선운사(禪雲寺)의 산내 암자다.
고창 선운산은 본래 도솔산(兜率山)이었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禪雲寺)가 있어 선운산이라 널리 불리게 되었다.
선운(禪雲)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兜率)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가리킨다.
주요 사찰로는 선운산 동쪽 사면의 말단부에 있는 선운사와
그 서쪽 1㎞ 지점에 위치하는 참당암(懺堂庵)이 있다.
참당암에서 조금 더 오르면 도솔암이 있다.
선운사는 577년(백제 위덕왕 24)에 검단(黔丹)선사가 창건한 절로
한때는 5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리기도 했으나 현재는 4개의 암자만 남아 있다.
도솔암은 그중 하나인 산내 암자에 속한다.
선운사 좌측 계곡은 데크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그 데크를 따라 올라가면 청소년 수련원인 ‘자연의 집’이 나오고
계속해서 울창한 숲속을 1㎞ 올라가서 서쪽으로 돌면 참당암이 있다.
이 절은 신라 진흥왕 때 의운(義雲)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문화재는 대부분 분실되거나 일제에 의한 약탈로 없어졌다고 한다. (참당암은 제2부에서 포스팅한다)
계곡을 더 올라가면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중생제도를 위해
도솔왕비와 중애공주를 데리고 입산, 수도하였던 좌변굴(左邊窟, 또는 眞興窟)과 도솔암(兜率庵)이 있다.
도솔암은 선운사 계곡의 절경을 이룬 그곳에 있는데 앞에는 천인암(千仞巖)이라는 절벽이 있고,
그 사이의 깊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도솔암 서쪽의 암벽 위에 내원궁(內院宮)이 있으며,
그 밑의 40여m 절벽에는 미륵장륙마애불(彌勒丈六磨崖佛)이 조각되어 있다.
이번 고창 선운산 선우사 기행은 동선(動線) 순서에 따라
선운사 산내 암자인 도솔암(兜率庵)을 시작으로 하여
참당암(懺堂庵), 선운사(禪雲寺) 순서로 포스팅한다.
데크를 따라 조금 올라 오면 선운사로 들어가는 극락교라는 다리가 보인다.
선운사는 제3부에서 포스팅한다.
선운사는 도솔암과 참당암을 둘러 보고 하산길에 들리기도 했다.
도솔암으로 계속 나아간다. 뒤 돌아 본 극락교
이른 시간이라 옅은 안개가 서려 선사의 향기를 더하고 있다.
데크를 따라 펼쳐지는 옅은 운무가 깔린 도솔암 가는 길의 아침 풍경.
검단선사를 기려 지었다는 검단정이 아취를 더한다.
가든 걸음을 잠시 멈추고 풍광을 즐겨본다.
이제 도솔암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옛적에 산악회를 따라 도솔암을 갈 때는
오르는 길이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 데
지금은 차로서 도솔암까지 올라 갈 수 있다. 세월 참 많이도 변했다.
도솔암 가는 길은 잘 다듬어져 중간 중간 쉬어갈 수 있는 편의시설 공간도 잘 만들어 놓았다.
진흥굴
<진흥굴>
선운사에서 도솔암에 오르는 길목에 있는 진흥굴(眞興窟)은 좌변굴(左邊窟)이라고도 하며,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중생구제를 위해 도솔왕비와 중애공주를 데리고 입산·수도한 곳이다.
도솔암(兜率庵)은 선운사 남서쪽 약 2.5㎞ 지점에 있으며,
깊은 계곡과 울창한 소나무·대나무 숲, 절벽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선운사에 전하지는 설화에 따르면 왕위를 버린 진흥왕이
도솔왕비, 중애공주를 데리고 선운사굴(지금의 진흥왕굴)에서 기도하였는데
어느날 밤 꿈에 미륵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이에 감응하여
딸 중애의 이름으로 중애사를 창건하고, 부인의 이름을 따 산 이름을 도솔산이라고 했다.
@고창 선운사 도솔암 장사송(高敞 禪雲寺 兜率庵 長沙松)
장사송은 천연기념물 제35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는 23m이며, 가슴높이둘레가 2.95m로,
지상 2.2m 높이에서 2개로 갈라져서 자란다. 수관폭은 동서가 16.8m이고
남북이 16.7m이며, 수령은 600년이라고 보고 있으나 단순한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
외관으로는 소나무같이 생겼으나, 지상 40㎝ 정도에서 갈라져서 자라는 동안
높이 2.2m쯤에서 다시 합쳐진 것으로 반송(盤松)에 해당한다.
그러나 고창 주민들이 장사송(長沙松)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호하게 됨으로써 장사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진흥굴 앞에서 자란다.
주변에는 다른 소나무와 더불어 자생수종들이 자라고 이 나무에 얽힌 전설도 있음직하지만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도솔암 입구에 있는 찻집이다.
2016년 12월에 상량식을 올렸다는 보제루(普濟樓)는 도솔암의 일주문 역활을 한다.
전면 3칸, 측면 2칸의 2층 건물이다.
@도솔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禪雲寺)의 산내 암자로
본래는 상·하, 동·서·남·북의 여섯 도솔암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 상·하·북 세 도솔암만이 남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도솔암이라 불리는 암자가 하 도솔암이며(현 극락보전 있는 곳),
하 도솔암에서 365계단을 올라가서 있는 도솔암 내원궁(內院宮)이
상 도솔암으로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다.
2부에서 포스팅 될 도솔암 내원궁은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기단이 없는 원형 초석에 장초석(長礎石)이 함께 사용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두리기둥을 사용하였고,
벽선에 아자형(亞字形) 이분합문(二分閤門)을 달았다.
천장의 구조는 우물천장이다. 건물의 규모는 작지만,
겹처마에 팔작지붕이 올려 있어 화려하고 안정된 느낌이다.
(도솔암에서 바라 본 사자봉)
도솔암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사적기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상 도솔암은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한 뒤 1511년(중종 6)에 지은(智誾)이 중창하였고,
1694년(숙종 20)에 태헌(太憲)이 중수하였다. 1705년에는 보경(寶鏡)이 중종(中鍾)을 봉안하였고,
1817년(순조 17) 중창되고 1829년(순조 29)에는 경문(敬聞)이 중수하였다.
(보제루 좌측 뒤편에 우뜩한 천마봉)
그 뒤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한 듯하다. 당우로는 내원궁만이 있는데,
이곳에는 미륵이 아니라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내원궁이란 설화에 의하면, 수미산 꼭대기로부터 12 유순(由旬) 되는 곳에
도솔천이라는 천계(天界)가 있고, 거기에 내원궁과 외원궁이 있다고 한다.
내원궁에는 미륵보살이 장차 부처가 되어 세상을 제도할 때를 기다리며 머물고 있다고 전한다.
따라서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은 미륵보살이 안치된 전각이어야 하지만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에는 미륵보살이 아닌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미륵보살은 나한전 옆 거대한 바위에 부조된 마애여래좌상이 미륵보살로 추정되고 있다.
보물 제280호로 지정된 이 선운사 지장보살좌상은 턱 밑까지 내려온 귓밥과 이륜(耳輪),
가슴의 영락이 특이하고 의문(衣文)의 선이 부드러운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조선 초기의 5대 걸작 불상 중의 하나로 꼽힌다.
하 도솔암은 1658년(효종 9)에 해인(海印)이 창건한 뒤 1669년(현종 10)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운사에는 삼장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선운사 승보박물관에 모셔진 금동지장보살(보물제279호)을 지(地)지장보살이라 하고,
산내 암자인 참당암에 모셔진 옥으로 조성된 지장보살좌상(전북유형문화재33호)을 인(人)지장보살,
도솔암 내원궁에 모셔진 금동지장보살(보물제280호)을 천(天)지장보살이라 칭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제루, 극락보전, 수광전, 종각, 내원궁, 나한전, 산신각과 요사채 등이 있다.
상부 약 100m 지점에는 보물 제1200호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로
높이 25m, 너비 10m의 암각(巖刻)에 부조된 마애미륵좌상이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동불암(東佛庵)이 있었으나 조선 말기 폭풍으로 무너졌다고 한다.
이 동불암지는 1994년에 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한 바 있다. 이 밖에 이 절의 입구에는 약수가 있다.
종각
@종각을 새로 지으면서 옛적 종무소를 개조한 것아 수광전(壽光殿)이다.
2014년 5월 수광전 아미타불과 후불탱화 점안식을 봉행했다.
수광전은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전각이다.
반야용선
#반야용선(般若龍船)은 미륵정토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로 나아가는 운송수단으로 표현된다.
아미타신앙에서는 원선(願船), 아미타원선, 사십팔원선(四十八願船),
대비선(大悲船), 자항(慈航) 등으로도 표현된다.
아미타원선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한 아미타불의 사십팔 대원(大願)을
중생이 정토 왕생하기 위해 의지해야 하는 배에 비유한 것으로,
중생은 이 배를 타고 아미타불이나 그의 권속보살의 인도를 받아 서방정토로 간다.
그런데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불보살의 서원과 자비 또한 반야의 표현이므로
원선이나 대비선, 자항 등은 반야선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찰의 불화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야용선도는 미타불과 그 권속이 왕생자를
용선으로 표현한 반야선에 태워 서방정토로 인도해가는 모습을 그린 도상이다.
용선은 선수(船首)나 선미(船尾), 혹은 배 전체를 살아있거나
조각한 용의 머리나 꼬리 혹은 용의 전신 모양으로 표현한다.
도솔암은 지장보살 기도도량임으로 탱화가 아닌 조형물로 반야용선도를 조성해 놓은 것으로 사료된다.
선수(船首)에 깃발을 든 보살은 인로보살이다.
반야용선에 탄 중생을 이끌어 가는 인도 주체도 다양한 구성을 보이는데,
즉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세지보살, 인로보살, 지장보살이 모두 함께
혹은 다양한 조합을 이루면서 등장하다가 점차 선수에서
번이나 삿대를 들고 인도하는 인로보살과
선미에서 호위하는 지장보살이 쌍을 이루는 도상으로 정착되어 간다.
인로보살과 지장보살이 반야용선도에 편입되는 것은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영혼천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극락보전(極樂寶殿)은 하 도솔암의 대웅전 격에 해당하며,
1658년(효종 9)에 해인(海印) 스님이 창건한 뒤 1669년(현종 10)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협시로 두고 있다.
<극락보전 주련>
極樂堂前滿月容(극락당전만월용)
玉毫金色照虛空(옥호금색조허공)
若人一念稱名號(약인일념칭명호)
頃刻圓成無量功(경각원성무량공)
서방정토 극락세계 만월같은 아미타불
금색신과 옥호광명 허공세계 비추시네.
누구나 일념으로 아미타불 부르오면
찰나 간에 무량공덕 원만하게 이루리라
신중탱
극락보전 아래에 있는 고색창연한 이 전각이 아마도 옛날 도솔암의 대웅전인 모양이다.
이 표말이 있는 언덕 길을 조금 오르면 나한전이 있고 나한전 있는 곳에서 내원궁 가는 돌계단이 나온다.
@나한전
고창 선운사 도솔암 나한전(高敞 禪雲寺 兜率庵 羅漢殿)은
전라북도 고창군 선운사의 산내암자인 도솔암에 있는 법당이다.
극락보전 서쪽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1985년 8월 14일 전라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1칸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건축수법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나한전 내부에는 흙으로 빚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이 협시하였고,
1910년 용문암에서 옮겨온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 시대 도솔암 용문굴에 이무기가 살면서 주민들을 괴롭혔는데,
이를 쫓아내기 위해 인도에서 나한상(羅漢像)을 모셔와 이곳에 안치하자 이무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무기가 다시 나타나지 못하게 하려고 이무기가 뚫고 간 바위 위에 나한전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나한상들의 표정이 해학스러우면서도 다정스러운 느낌이 든다.
나한전 앞에 있는 이 석탑은 마모가 심하고 또한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도솔암 윤장대
~2부에서 도솔암 내원궁의 보물 금동지장보살과 마애여래불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