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기행3 고려 태조 왕건이 지었다는 논산 천호산 개태사(2/2)
논산기행3 고려 태조 왕건이 지었다는 논산 천호산 개태사(2/2)
정법궁(正法宮)과 창운각(創運閣)은 1974년 건립되었다.
전각 안에는 단군 조상과 아미타불 그리고 관운장 영장이 모셔져 있다.
아미타불
단군
관운장
@삼일노상정천궁(三一老上正天宮)은
팔각정(八角亭) 건물로, 단기 4293년 경자년(更子年: 1960년)에 상량(上梁)되었다.
전각 안에는 방석 위에 석상으로 된 나반존자 좌상(坐像)이 모셔져 있다.
나반존자는 일반적으로 독성이라 하여 삼성각(三聖閣)이나 독성각(獨聖閣)에 모시는데,
개태사에서는 삼일지상정천궁이라고 명명하여 다른 사찰과는 달리 팔각정에 모시고 있다.
또한, 일반 사찰에서는 탱화를 모시는 데 반하여, 석조로 조각된 나반존자 상을 모시는 점이 특이하다.
개타사 삼존석불을 현몽하여 발굴했던 정광영씨가 계룡산에서 가져온 돌로
나반존자 상을 조성하여 모셨다고 한다. 뒤에는 산신탱화와 칠성탱화가 조성되어 있다.
우주정
@편액 우주정(宇宙井) 이라 붙은 보호각 안에는 철확(鐵鑊)이 있다.
이 철확은 시도민속문화재 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의 대형 철확(쇠솥)이다.
승려 500명의 밥을 지을 수 있는 대형 철제 솥으로 고려의 태조 왕건이 하사했다고 한다.
이 철확(쇠솥)은 개태사가 폐사되자 방치되어 있었는데, 조선 고종 24년(1887) 대홍수로
2km 정도 하류로 떠내려간 것을 현 개태사 자리에 옮겨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큰 가뭄에 이 솥을 다른 곳에 옮기면 비가 온다는 전설도 있다.
형태는 마치 테두리가 없는 벙거지형의 모자를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으로,
약 23cm 높이의 곧바로 선 테두리가 솟아있고
그 아래로 20cm 정도의 경미한 경사면을 이루다가
다시 둥글게 급경사를 이루면서 바닥에 연결되고 있다.
솥의 두께는 역 3cm 정도이며 외부의 밑바닥은 지름이 약 90cm의 둥근 굽이 있어
불을 효과적으로 잘 받게 되어있다.
충청도 연산군조에 따르면 개태사 전성기에 된장을 끓이던 솥이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일본군이 일본으로 가져가 무기제작에 쓰려고 부산항으로 옮겨 배에 실으려 하자
하늘에서 벼락이 쳐 옮겨가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별로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이다.
이 쇠솥은 일제 강점기시 서울에서 열린 박람회에 출품이 되기도 했다
개태사 감나무설화
우주당 한쪽 옆에는 몇십 년 묵은 감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1970년대에 그 감나무의 굵은 가지에서 엄나무가 자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접목한 일도 없고 자라는 부위에 흙이 있는 것도 아닌데
종류가 다른 두 나무가 한뿌리에서 동시에 자라고 있어 화제가 되었다.
이 감나무는 일제하에서 독립될 당시,
김광영 여사가 매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개태사에서 수도하던 중,
"감나무에서 엄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면 미륵불이 출현한 것을 알라"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나무라고 한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일로 인해 국가에서는 천연기념물 제663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륵의 출현을 예언한 엄나무는 1990년대 말 어느 때인가 죽고 말았다고 한다.
개태사 종무소와 요사채들
@개태사금동대탑
옛 개태사에서 출토된 구리로 만든 탑. 목탑 모양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것으로
1984년 8월 국보 제213호 금동대탑으로 지정되어 있다.
금동대탑은 동(銅) 재질에 금박을 씌운 155㎝ 크기의 탑 모양 공예품으로
고려 전기 10~11세기 제작되었다. 개타사는 940년에 창건된 이래
이 금동대탑을 점유해 오다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개태사 소유 땅에 묻어뒀다고 주장하며,
1934년 개태사가 중창된 이후인 1960년대 초 개태사 부지에서 출토됐으므로
개태사 소유”라고 주장하며 삼성문화재단에 2009년 6월 소유권반환 소송을 냈지만,
최종 판결에서 삼성 측이 승소했다.
현재 개태사 금동대탑은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개태사를 나오면서 돌아 본 전경
이층 누각으로 일층은 천왕문을 겸하고 2층은 종루로 이용된다.
이 종루 앞에는 천연지라는 작은 연못이 있고, 수련이 피어 있다.
천연지(天蓮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