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기행(5/5) 배달의 성전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1/2)
하동기행(5/5) 배달의 성전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1/2)
하동기행의 마지막 코스로 청학동 삼성궁을 찾았다.
쌍계사에서 약1시간 정도 거리인 청학동 삼성궁은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 묵계리에 소재하며
한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품속깊이 해발 850m에 자리하고 있다.
청학동의 명소는 두 곳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전북 순창 출신의 강대성을 도조로 창도된 유불선합일갱정유도(儒佛仙合一更定儒道)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모여 “보발정신 및 의관정제의 예법과 유불선 동서학 합일사상을 이어 받아
만방일화 수성단가를 이어받고 수도 정진하는 곳”인 도인촌이고,
다른 하나는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고유의 도량으로,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를 실현하고자 연마하는 배달성전인 삼성궁이다.
이 두 곳은 따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청학동이라는 화주(華柱:일주문)을 지나 언덕을 하나 두고
위는 도인촌이, 아래는 삼성궁이 자리하고 있다.
삼성궁(三聖宮)의 ‘삼성’은 한배임[환인], 한배웅[환웅], 한배검[단군]을 뜻하며.
배달민족의 고유 경전이라는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全戒經)』의 삼화경과
삼륜(三輪), 오계(五戒), 팔조(八條), 구서(九誓) 덕목을 교리로 삼고 신선도를 수행한다.
국풍(國風)인 천지화랑(天指花郞) 정신을 연마하는 구도자들의 마을이며,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으로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실현하고자 하는 수행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궁의 정확한 명칭은 ‘지리산청학선원 배달성전 삼성궁’으로
이 고장 출신 한풀선사(속명 강민주)가 1983년 고조선 시대의 소도(蘇塗)를 복원하여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곳이다.
1984년 음력 3월 16일 삼성사(三聖祠)를 삼성궁으로 개명하고,
선도(仙道)의 중흥을 꾀하기 위해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화전민이 버리고 떠난 폐허속의 원시림을 가꾸는 작업을 시작하여,
울타리를 만들어 행인의 출입을 막고, 굴러다니는 돌을 모와
1300여기의 탑과 연못을 파는 행선(行仙)을 하여 이룩한 것이 오늘의 삼성궁이라고 한다.
@청학동(靑鶴洞)은 예부터 푸른 학이 머문다는 오지의 마을이었다.
이 지리산 청학동에 대해서는 고려 때 이인로에 의해 기록을 보면.
“옛날 노인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리산 속에 청학동이 있다.
길이 매우 좁아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고, 몸을 구부리고 몇 리쯤 가면 넓게 확 트인 드넓은 곳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엔 사방에 모두 비옥한 땅이 널려 있어 곡식을 뿌려 가꾸기에 알맞다.
그러나 오직 푸른 학인 청학만이 그 안에 살고 있다. 청학동이란 이름도 그 때문에 붙여졌다.
대개 옛날에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무너진 담과 구덩이가 아직도 가시덤불에 쌓여 남아 있다.” 고 했고,
또 조선시대 지리책 <신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는 청학동이 진주 147리에 있다고 언급되어 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청학동을 찾아 나선 기록이 많이 있다.
푸른 학이 있는 곳은 삼성궁 전시관이고 그 아래는 주막이다.
청학동 삼성궁 주변에는 식당이 없다.
삼성궁 주막의 주 메뉴는 파전과 도토리묵 그리고 막걸리였다.
삼성궁으로 오르는 검단길과 삼성궁 ‘거북 못’ 주변, 삼성을 모신 건국전 일대는
마이산의 돌탑군처럼 수많은 돌탑들과 바위 위에
암각된 민화같은 그림들이 신비감과 고풍스러운 풍경을 자아낸다.
삼성궁 전시관 뒤편모습이다. 조형물은 청학동을 상징하는 청학이다.
삼성궁 가는 길에 거대한 알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삼성궁에 조성된 유일한 폭포다. 자연폭포인지 인공폭포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삼청궁에는 이런 전서(篆書) 암각된 몇 개의 문이 있다. 글이 난해하여 그 의미를 잘 알 수 없다.
내 얕은 식견에는 <묘우생문>으로 보이는데,... 동방의 문이란 뜻인가?
토끼모양인데..
비천상도 있고.
학소대
감실입구
고조선의 소도는 제의가 행해지는 신성 지역이며 별읍이 바로 성역이다.
또한 소도는 읍락의 원시 경계표라고도 한다.
소도는 신단(神壇)의 의미인 ‘수두’나 높은 지대의 의미인 ‘솟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삼성궁의 감실은 이를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감실(龕室): 사당안에 신주를 모시는 장(欌:장농)으로 영혼이 깃드는 방으로 해석되어 있다.
@죽선자(竹仙子): 선국을 복원하는 데 평생을 바친 강대주선생의 호. 선국을 일으킨 선암선인의 형
감실(龕室) 안에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가 바위에 암각되어 있다..
마고성
@역사의 여명기인 황하문명시대에 우리민족은 동이(東夷)라는 이름으로 그 문명을 열어갔다.
동이라는 종족이 생겨나기 전에는 구려(九黎)가 있었고, 구려가 생겨나기 전에는 풍이(風夷)가 있었고,
풍이가 생겨나기 전에는 마고(麻姑)가 있었다.
마고할미는 태(胎)를 점지하는 삼신(杉神)할미라 부르는데, 곧 산신(産神)을 말한다.
<符都誌>에서는 마고가 인류의 조상으로 나온다.
마고는 그의 두 딸(소희와 궁희)과 함께 마고성, 실달성, 허달성의 삼성(三城)에 천수(天水)를 끌어들여
후손들을 쫓아내고 성을 청소하고 폐쇄하였다고 한다.
이때 황궁(黃穹), 청궁(靑穹), 백소(白巢), 흑소(黑巢)의 부족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들이 오늘날의 인종별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한민족을 비롯한 아시아계 인종은 황궁의 후예에 속하고, 아랍계 인종은 청궁의 후예에 속하고,
백인은 백소의 후예에 속하고, 흑인의 후예는 흑소의 후예에 속한다고 한다.
마고는 황궁에게 해혹복본(解惑復本)이라는 유시를 남기고, 본천천부인(本天符三印)을 주어 보냈는데,
해혹복본은 오늘날 인류가 믿는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되었고,
천부삼인은 돌에 해와 달과 북두칠성을 새긴 것으로, 기독교의 십자가, 불교의 만자문양,
서양의 반지, 동양의 삼태극문양으로 다양하게 변하였다.
지금도 이 천부삼인을 명두(明斗)라는 이름으로 전수해 오고 있는데
명두란 해(日)와 달(月)과 북두칠성(斗)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해혹복본(解惑復本)은 곧 본천천부인(本天符三印) 은 (환인)천부경. (환웅)삼일신고.
(단군)참전계경의 해혹복본을 말하며
한민족에서 천부삼인이 어떻게 하여 명두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전하게 되었는가를 밝힌 신화(神話)가 <단군신화>이다.
천부삼인이 황궁에서 유인에게 전해지고, 유인에게서 한인(환인)에게 전해지고,
한인(환인)에게서 한웅에게 전해지고, 한웅에서 단군왕검에게 전해지고,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인 조선이 멸망하면서 조선의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단군이 구월산에 들어와 은거하면서,
삼성당(三聖堂)을 짓고 三聖(한인·한웅·단군왕검)에게 제사지내면서 전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삼성궁에는 몇개의 연못이 있는데 위에 보이는 연못이 제일 규모가 크다.
거북지라고 불리는 연못인데
이 거북지는 우리 민족이 바이칼 호수에서 세력이 형성되면서
점차 한반도로 내려와 정착했음을 상징하는 한반도와 바이칼 호수를 본 따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최근에 발견된 정통 사서(史書)인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인류의 시원(始原)과
동방 고대(古代)문명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는데
『환단고기(桓檀古記)』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에 의하면,
“옛날 시베리아에 환국(桓國, B.C7,199~3,898)의 환인(桓仁)이 살고 있었는데,
환웅(桓雄)으로 하여금 무리 3천을 이끌고 백두산으로 내려가
배달국(倍達國, B.C3,898~2,333)의 신시(神市)를 열도록 하였으며,
그 후 단군(檀君)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해 고조선(古朝鮮, B.C2,333~238)을 개국하였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수천 년 간의 역사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표현한 내용이다.
한민족의 기원은 환국(桓國)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삼성기(三聖記)』상권에, “우리 환국(桓國, B.C7,199~3,898)의 건국은 가장 오래되었는데,
일신(一神)이 있어 사백력(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神)이 되시니, 광명은 우주를 비추고,
우주의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이에 환국(桓國, B.C7,199~3,898)의 환인(桓仁)은 또한 감군으로서
천계에 계시면서 문명을 가르치셨다.” 라는 내용이 나온다.
“사백력”은 시베리아의 한자식 표기이다.
환국(桓國, B.C7,199~3,898)은 천산(天山)에서 바이칼 호(Baikal lake)에 이르는 곳에 세워진
인류 최초의 국가를 말한다. 환인(桓仁)의 시대는 고고학적으로 보면,
시베리아 지역에서의 신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또한,『삼성기(三聖記)』하권에서는 그에 대해 더 구체적인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파나류산(천산) 밑에 환인(桓仁)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天海, 바이칼호)의 동쪽 땅이다.
땅이 넓어 남북 5만리요 동서 2만리니 환국(桓國)이요, 모두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환인(桓仁)은 7대를 전하여 역년이 3,301년(B.C7,199~3,898)이다.” 라고 적혀 있다.
천해(天海)는 지금의 바이칼호(Baikal lake)를 말한다.
“바이칼(Baikal)”이란 이름도
한민족에서의 ‘밝(밝다)'이란 명칭의 연음화 현상과 관계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태백일사』를 보면, “옛날 환인(桓仁)이 있었는데 천산(天山)에 내려와 거하시며,
천신(天神)에 제사지내고 정명인민(正明人民) 섭치(攝治)하시고 들에 사시매,
곤충과 짐승의 해독(害毒)이 없어지고,” 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성밀기』를 보면, 파나류산(천산) 밑에 환인(桓仁)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天海, 바이칼호)의 동쪽 땅을 역시 파나류국이라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환인(桓仁)에 대한 유사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파나류”는 알타이어 계통의 말로 천산(天山)으로 말한다고 한다.
언어학적 연구가 따라야 하겠지만, 실제로 1만년 전 신석기문화가 중앙 아시아와 남부 시베리아일대에서 전개되었는데,
많은 유적지가 발굴되고 있다. “곤충과 짐승의 해를 당한때”는 구석기 시대를 말하며,
신석기 문명의 출발과 함께 사라졌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위의 기록은 매우 타당성있는 적절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정착과 함께 신석기 시대의 국가 체제였던 환국(桓國)의 통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출처: 위키백과)
삼신궁
삼신궁은 한풀선사가 제자들과 함께 수련한 장소라 한다.
~삼성궁2부로 계속~